과거사라는 거울을 통해 좋은 자질을 닦아야 한다
과거사라는 거울을 통해 좋은 자질을 닦아야 한다
  • 영광21
  • 승인 2013.03.2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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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기史記>의 고사성어로 통찰하는 삶의 지혜③ - 정치의 본질과 통치자의 자질

정치가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야 많겠지만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선진화를 가로막고 있는 학연, 혈연, 지연이라는 퇴행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정치 영역에서 가장 심각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정치인들의 자질 또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마천은 <하본기>에서 상고시대의 탁월한 정론가라 할 수 있는 고요皐陶와 훗날 하나라의 시조가 되는 우禹 사이의 대화를 통해 정치(통치)의 본질을 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치의 본질
우가 고요에게 통치의 요령을 묻자 고요는 주저없이 “재지인在知人, 재안민在安民”이라고 대답한다. 단 여섯 글자에 불과하지만 그 의미는 결코 만만치 않다. “사람을 알고 백성을 편하게 하면 된다”는 고요의 대답에 우는 그 경지는 요 임금도 오르지 못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자 고요는 통치자로서 갖추어야 할 아홉 가지 덕목으로 다음과 같은 ‘구덕九德’을 설파한다.  

1. 관이율寬而栗 : 너그러우면서 엄격함.
2. 유이립柔而立 : 부드러우면서 주관이 뚜렷함.
3. 원이공愿而共 : 사람과 잘 지내면서 장중함.
4. 치이경治而敬 : 나라를 다스릴 재능이 있으면서 신중함.
5. 요이의擾而毅 : 순종하면서 내면은 견고함(확고함).
6. 직이온直而溫 : 정직하면서 온화함.
7. 간이염簡而廉 : 간결하면서 구차하지 않음.(자질구레한 일에 매이지 않음.)
8. 강이실剛而實 : 굳세면서 착실함.
9. 강이의强而義 : 강하면서 도의를 지킴.

고요는 이 아홉 가지를 다 갖추면 천하를 통치할 수 있다고 단언하면서 차분하고 신중하게 자리를 지키면서 덕 있는 사람을 기용하면 천하가 호응할 것이라고 했다. 사마천은 이렇게 ‘사람을 알고 백성을 편하게 하는 것’이란 잠언을 인용해 정치의 본질을 간파했는데 우리 정치가들은 이와는 반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통치자의 자질과 과거사
정치(통치)의 본질을 안다고 해서 정치가 반드시 잘 이뤄진다고는 할 수 없다. 정치가의 자질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가가 갖춰야 할 자질을 놓고 말들이 많은데 논란이 되고 있는 정치가의 역사관 문제도 그 중 하나이다.

고대로부터 통치자들은 역사를 거울에 비유했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군으로 꼽히는 당나라 태종 이세민李世民은 자신에게는 세 개의 거울이 있는데 얼굴을 비춰보는 거울인 동경銅鏡, 자신의 언행에 대해 비판해주는 충직한 사람들인 인경人鏡, 지난 과거사를 비춰주는 사경史鏡이 그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늘 자신의 언행을 비판하던 충신 위징魏徵이 죽자 거울 하나를 잃었다면서 통곡했다.
‘역사의 거울’이란 뜻의 ‘사경’은 ‘사감史鑑’이라고도 하는데 과거사를 통해 현재의 언행을 비추어 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기>와 더불어 중국의 양대 역사서로 평가받는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은 통치자를 위한 교과서로도 불리는데 과거사라는 거울을 통해 통치의 득실을 파악하고 통찰함으로써 좋은 자질을 닦으라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사마천은 과거사의 중요성을 “전사지불망前事之不忘, 후사지사야後事之師也”(지난 일을 잊지 않는 것이 나중 일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오랜 잠언을 인용해 강조하고 있다.(<진시황본기>에 인용된 가의賈誼의 ‘과진론過秦論’과 <전국책> ‘조책’.)

이와 비슷한 격언으로는 “전차복前車覆, 후자감後車鑑”(<한시외전>)이란 것이 있다. “앞의 수레가 넘어지면 뒤의 수레가 살피게 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전철前轍을 밟지 말라’는 말도 나왔다. 넘어진 수레가 지나간 자리를 따라서 밟지 말라는 뜻으로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경고의 잠언이자 격언들이다.

과거사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보자고 애써 강조하는 정치가들의 공통점은 과거사에서 잘잘못, 특히 잘못을 돌이켜 보고 반성하려는 기본적인 역사관이 결여돼어 있는 경우가 많다.

과거사가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사마천은 이렇게 말한다.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고대의 지난 일들을 기억해야 하는 까닭은 고대의 그것과 똑 같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당대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고조공신후자연표>의 서문)

사마천이 인용한 이 잠언에서 ‘과거를 자신의 거울로 삼는다’는 ‘지고자경志古自鏡’이란 유명한 성어가 탄생했다. 또 과거사를 중시해 현재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로 삼으라는 것과 무작정 과거로 돌아가자는 복고주의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영수 센터장 
영광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