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수첩에는 핵정책이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의 수첩에는 핵정책이 있을까
  • 영광21
  • 승인 2013.04.0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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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는 이른바 ‘17인 위원회’라고 불리는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가 있다. 2011년 4월28일 위원회는 28명의 전문가와 함께 토론회를 가졌다. 이 토론회는 독일의 공영방송인 푀닉스(Phoenix)가 11시간 동안 이어진 토론회를 생중계했다.

토론회에 참가한 위원들은 다양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뒤 에너지 정책을 정하기 위해 초빙한 전문가였다.

“정부의 들러리가 될 것”이라며 위원회 참여를 거부한 녹색당과 독일 환경단체 분트, 그린피스의 예상과 달리 위원회는 전향적인 결론을 내렸다. 위원회는 8주 동안 전국민에게 공개된 무려 100차례가 넘는 토론회와 공청회를 열었다.

그 결과는 “2022년까지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해 냈고 위원회의 설득력은 아주 컸다. 메르켈 총리는 핵발전소 수명연장 정책을 폐기했다.

독일의 위원회의 결론을 보고 아주 부러웠다. 우리나라는 언제쯤에나 그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 때문에 머리가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아직도 핵이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도처에 널려있어 나의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은 암담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4월중 국내에서도 독일의 ‘17인 윤리위원회’를 닮은 시험을 시작한다고 한다. 미덥지는 않지만 ‘14인 공론화 위원회’가 출범한다고 한다. 정식 명칭은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이하 공론위)로, 그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사용후 핵연료인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하는 정부의 자문기구이다.

그동안 국내에는 23기의 핵발전소가 지어졌지만 한번도 사용후 핵연료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없었다. 그런 탓에 현재 핵발전소 수조에 임시로 담아둔 사용후 핵연료는 이미 저장량이 70%를 넘어서고 있는 지경이다. 그래서 핵발전소를 ‘착륙장없이 이륙한 비행기’라고 빗대곤 한다.

사실 공론위 출범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2009년 7월 이명박 정부는 김명자 전환경부 장관을 공론위원장으로 임명한 바 있다.

그러나 14명의 위원 위촉식과 서울 양재동 사무실 현판식을 앞두고 돌연 출범이 취소됐다. 취소이유는 이명박 정부가 한미FTA 촛불집회를 겪은 뒤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이 불거지는 것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번에 출범한다는 공론위의 밑그림을 보면 여전히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다. <한겨레21>이 진보정의당 김제남 국회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 추진 계획(안)’ 보고서로 공론위 구성 방향을 짐작해볼 수 있다.

우선 정부가 내놓은 공론위 위원의 구성이 너무 폐쇄적이고 공론위의 논의 주제를 제한할 가능성이 다분히 엿보인다.

보고서에는 ‘인문사회분야 5명(갈등관리, 사회과학, 언론, 법률), 시민환경단체분야 4명(환경단체, 시민단체, 경제단체), 기술공학분야 3명(원자력, 에너지, 방사선·환경), 핵발전소 지역 대표 2명 등 모두 14명의 공론위원을 임명해 운영하겠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동안 메르켈 총리 따라잡기를 즐겼던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한국판 ‘17인 윤리위원회’를 이끌 용기가 있을지 의문이다. 또 공론위 출범을 시작으로 박근혜 정부는 핵정책의 방향을 밝혀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고 하겠다.

오는 8월에는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핵정책이 ‘수첩’에서 나와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사용후 핵연료 논의가 그녀의 수첩에서 과연 나올지 지켜보는 도리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