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선여류從善如流가 힘든 사회
종선여류從善如流가 힘든 사회
  • 영광21
  • 승인 2013.04.04 14: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사기史記>의 고사성어로 통찰하는 삶의 지혜 ⑤ - 리더의 고독

한국 정치에서 대통령이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막중하다. 봉건의식과 과거사의 잔재가 여전한 우리 사회인지라 최고 리더에게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정치적 색깔이 극명하게 갈라진다. 갈라지다 못해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다른 사람을 경멸하고 증오하기까지 한다. 모르긴 해도 우리 정치가들이야말로 정치하기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다 각계각층의 리더들의 수준도 도토리 키재기이다. 더 나쁜 것은 소위 지도층이란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이런 부정적 요소들을 악용하거나 심지어 부추긴다는 사실이다. 사마천은 이런 리더들을 향해 이렇게 꼬집는다.

“정확한 의견이나 충고는 마치 물이 흐르듯 듣고 따르며 남에게 은혜를 베풀 때는 서두르되 결코 피곤해 하지 않는다.”(권40 <초세가>)

이 말은 진晉나라의 정경正卿 숙향叔向이 춘추시대 최초의 패주였던 제나라 환공桓公을 칭찬한 말인데 오래 전부터 전해오는 잠언을 인용한 것 같다.(<좌전> 소공 13년 조와 성공 8년 조에 각각 ‘군자왈君子曰’로 인용돼 있다.)

원문은 ‘종선여류從善如流, 시혜불권施惠不倦’의 여덟자이다. 이 여덟 글자의 잠언에는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너그럽게 대하라는 뜻도 함께 포함돼 있다. 남에게는 각박하고 자신의 잘못에는 한없이 너그러운 우리 지도층과는 정반대다.

제나라 환공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원수 관중管仲을 재상으로 발탁해 부국강병을 이룬 뛰어난 리더였다. 이 일로 그는 ‘외거불피구外擧不避仇’, 즉 ‘외부에서 남을 기용하되 (그 사람이라고 판단되면)원수라도 피하지 말라’는 참으로 실제로는 행동으로 옮기기 힘든 용인用人 원칙을 실천한 인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진정한 리더의 고독
환공이 원수조차 기용할 수 있었던 것은 포숙의 충고를 ‘종선여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리더들에게 가장 부족한 소양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환공은 지금으로부터 약 2,700년 전 사람이다.
 
참모는 물론 상대가 지적해 주는 정확하고 옳은 충고와 지적을 마치 물이 흐르듯 경청할 수 있는 리더를 우리 사회는 갈망하고 있다.

리더의 길은 고독하다고들 한다.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는 대중과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자신을 물고 뜯는 정적들, 나라와 백성들보다는 자리와 권세에 눈이 어두운 질 떨어지는 측근들로 둘러싸인 리더의 신세는 그야말로 망망대해에 떠 있는 한척의 돛단배를 방불케 한다.

이런 고독감은 리더가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정직할 때 더 커진다. 주위보다 리더의 식견이 뛰어날 때도 그렇다.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개혁 군주 무령왕은 나라 전반을 개혁하지 않고는 살벌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는 ‘호복기사胡服騎射’로 대변되는 개혁을 단행한다. ‘오랑캐 옷을 입고 말을 달리며 활을 쏜다’는 뜻의 호복기사는 그 후 전면 개혁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무령왕의 개혁은 수구 기득권세력의 전면적인 저항에 부딪친다. 개혁의 본질이 ‘이해관계의 재조정’, 다시 말해 이익의 분배이니만치 가진 자들은 자기 것을 내놓지 않으려고 사활을 건 저항에 나서기 마련이다. 심지어 숙부조차 무령왕의 개혁에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는데 아예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타나지도 않으면서 사람을 보내 이렇게 전했다.

“신이 왕께서 오랑캐 옷을 입으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신은 재주도 없고 병들어 누워 있는 몸이라 조정에 나가 자주 진언을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왕께서 저에게 명령하시니 신이 감히 이에 응대함으로써 저의 우매한 충정을 다하고자 합니다.

신이 듣건대 중국은 총명하고 예지있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고 만물과 재화가 모이는 곳이며 성현이 교화를 행한 곳이고, 인의가 베풀어진 곳이며 시詩, 서書와 예악禮樂이 쓰이는 곳이고, 특이하고 우수한 기능이 시험되는 곳이며 먼 곳의 사람들이 관람하러 오는 곳이고, 만이蠻夷가 모범으로 삼는 곳이라고 합니다.

지금 왕께서는 이를 버리시고 먼 나라의 복장을 입으시니 이것은 고대의 교화를 개변함이요, 고대의 도를 바꿈이며, 민심을 거스르는 것이고, 학자의 가르침을 저버리는 것이며 중국의 풍속과는 동떨어진 것이니, 신은 왕께서 이 일을 신중히 고려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독은 리더의 운명
무령왕은 수구 세력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치자 잠시 머뭇거렸다. 이에 조정 대신 비의肥義는 무령왕의 개혁의지를 다음과 같은 말로 격려하고 나섰다.

“신이 듣기에 일을 하려고 할 때 머뭇거리면 성공하지 못하고 행동할 때에 주저하면 명예를 얻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왕께서 기왕 세상의 습속을 위배하였다는 비난을 감수하시려고 결심하셨으니 세상 사람들의 의론은 생각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무릇 최고의 덕행을 추구하는 자는 세속적인 것에 부화뇌동하지 않으며 큰 공적을 이루고자 하는 자는 범부凡夫와 모의하지 않는 법입니다.”(이상 권43 <조세가>)

여기서 ‘논지덕자불화우속論至德者不和于俗, 성대공자불모우중成大功者不謀于衆’이라는 잠언이 인용되고 있는데 큰일을 앞두고 의지가 꺾이려는 순간 비의는 잠언의 적절한 비유를 들어 무령왕의 용기를 북돋우었고 무령왕은 확고한 신념과 과감한 결단으로 호복기사를 밀어부쳤다.

아울러 숙부에게 사람을 보내 간곡한 어투로 “숙부께서는 지금 일반적인 풍속을 말씀하시고 계시지만 저는 풍속을 조성하는 이치를 말하는 것”이라고 설득해 솔선수범하여 ‘호복’을 입고 조정에 들어오게 했다.

리더의 길은 고독하다. 하지만 그 길이 옳은 길이라면 고독을 감내해야 한다. 그것이 리더의 운명이다. 그리고 역사상 옳은 길은 단 한번도 편했던 적이 없다는 사실로부터 작으나마 위안을 받았으면 한다.


김영수 센터장
영광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