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원전 207년 유방은 항우에 앞서 진나라의 수도 함양에 입성한다. 이로써 진나라는 통일 후 불과 15년 만에 실질적으로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졌다.(유방의 뒤를 이어 항우가 함양에 입성해 살인과 방화 그리고 약탈을 일삼았고 이를 진나라의 멸망으로 보기도 한다.)
모든 면에서 월등한 전력을 가졌던 항우는 유방에게 허를 찔렸다. 화가 난 항우는 수십 만 대군을 동원해 함양으로 진격했다. 항우의 군대는 일단 홍문이란 곳에 진을 치고 유방의 동태를 살폈다.
통 큰 처세와 통치자 역할
항우의 적수가 되지 못하는 유방은 장량 등의 권유를 받아들여 홍문으로 가서 항우에게 사과하기로 한다. 항우의 책사 범증은 이참에 유방을 완전히 제거하라고 신신당부한다. 항우는 술자리를 베풀었고 두 영웅이 마침내 홍문에서 조우한다. 이것이 저 유명한 홍문연鴻門宴이란 세기의 술자리다.
유방의 사과에 마음이 풀린 항우는 계속되는 범증의 눈짓에도 유방을 죽이지 못했고 화가 난 범증은 항장을 시켜 검무를 추는 척하다가 유방을 찔러 죽이라고 한다. 장량의 친구인 항량이 나서 항장의 칼을 받아내지만 분위기는 점점 험악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 때 번쾌가 유방에게 급히 호랑이 아가리를 벗어나라고 권한다. 유방이 인사도 않고 어떻게 자리를 빠져 나가냐며 망설이자 번쾌는 “대행불고세근大行不顧細謹, 대례불사소양大禮不辭小讓”라고 말한다. “큰일에는 자잘한 것은 따지지 않고 큰 예의에서는 작은 나무람 정도는 겁내지 않는다”는 말이다.(항우본기) 이 자리에서 번쾌는 유방을 물고기와 육고기에 항우를 칼과 도마에 비유하면서 위급한 상황에서는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일단 몸부터 피하고 보는 것이 상책이라고 지적했다.
정말 위급한 상황이라면 체면이나 인사 같은 것은 얼마든지 생략할 수 있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큰일 운운하며 정작 따져야 할 것은 따지지 않고 그냥 넘어가려는 행동은 옳지 않다. 그것이 나라 일과 관련된 통치자의 스타일이라면 더욱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꼼꼼하고 가혹하게 따져서 공직수행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실수와 실책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과정은 필수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통이 큰 처세이자 통치자가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길이다.
물론 번쾌의 말처럼 나라의 존망이 걸린 큰일이나 생사가 걸린 큰 예절의 경우라면 자잘한 체면이나 격식을 차린 인사 정도는 생략할 수 있을 것이다. 번쾌의 이 명언은 권87 <이사열전>과 권97 <역생육고열전>에도 비슷한 표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당시 즐겨 사용된 관용구로 보인다.
선입견이 미치는 악영향 고려
요즘처럼 외모 지상주의가 일상화된 사회의 병폐를 꼬집는데 꼭 어울리는 명구가 이모취인以貌取人, 실지자우失之子羽(권55 유후세가)라는 것이다.
뜻을 풀이하자면 ‘생긴 걸로 사람을 판단하자면 자우는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다’라는 정도가 된다. 자우는 공자의 제자인 담대멸명澹臺滅明의 자이다. 어질고 덕이 있었으나 얼굴이 아주 못 생겼다. 그래서 늘 주위 사람들의 선입견에 손해를 본 사람이었다.
이 명구는 사마천이 공자의 말을 논평한 것인데 원전은 <한비자>(현학편)이다. 그 의미를 파고들면 외모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의 선입견이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심각한 경고의 의미가 내포돼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현학편에는 공자가 외모를 보고 사람을 선택했다가 자우를 놓쳤고 말재주로 사람을 골랐다가 재여라는 언변만 좋은 자를 제자로 뽑았다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공자처럼 지혜로운 사람도 이런 실수를 하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외모나 겉으로 표출되는 언어가 갖는 위력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지적한 것이다.
사마천은 유후 장량의 사당을 직접 탐방하고서야 장량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버릴 수 있었다. 장량은 젊은 날 가산을 털어 창해 역사力士를 기용해 진시황의 암살하려다 실패해 수배자 신분으로 천하를 떠돌았다.
나라의 존망은 인재기용에서 출발
이런 전력 때문에 사마천은 장량이 당당한 풍채를 가진 우락부락한 남자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장량의 사당에 걸린 미녀같이 생긴 장량의 초상화를 보고는 문득 공자의 이 말씀을 떠올린 것이다.
한 사람의 인격을 평가할 때는 실천을 통해 표출되는 그 사람의 내적 자질을 보아야지 겉으로 드러나는 몇마디에만 기대서는 안된다. 사마천은 리더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을 쓰는가를 보라(부지기군不知其君, 시기소사視其所使)”고 했다.(권104 전숙열전) 리더의 용인用人을 보면 리더의 자질과 정책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이다.
통치자의 자질은 얼마나 정확한 정책을 내느냐와 그 정책을 실천에 옮길 얼마나 좋은 인재를 기용하느냐로 판가름 난다. 어느 경우든 선입견은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한다.
지금 우리가 통치자의 선입견으로 인한 실망과 피해를 톡톡히 보고 있다.
김영수 센터장
영광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