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 박찬석 / 본지편집인
<영광21>이 야무진 걸음마를 시작하여 2주년을 맞는다고 하니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 수 없다”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인간의 이기심을 고려할 때 어느 정도 혼탁함은 인정해줘야 경제와 사회도 활력이 있다는 뜻으로 일리 있는 말이기에 그동안 지나치게 맑은 쪽으로 치우쳐서 오히려 사회를 경직되게 하지 않았는가 하는 노파심에서 떠오른 말이다.그러나 이제 반칙을 통해 성장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21세기 한국 사회가 한 단계 더 올라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투명성이 생명인 것이다. 반칙을 하면 손해를 보고, 규칙을 지키면 이익이라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경제계에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있다. 우리 기업들이 그 가치에 비해 제대로 된 평가를 못받고 있다는 뜻인데, 그 원인으로 가장 먼저 지적되는 것도 한국사회의 불투명성임을 생각한다면 투명성의 중요성을 새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사회는 ‘부정부패방지’에 있어 많은 변화를 겪었다. 부패방지법이 제정되고, 국가기관인 부패방지위원회가 출범하였다. 공직자행동강령이 제정되고 공직자윤리법이 개정되었으며 돈세탁방지법이 제정되었다. 대통령선거자금을 비롯한 정치자금 문제로 온 나라가 몸살을 겪고 유력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사법처리되기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쯤 되었다면 당연히 부정부패가 사라지고 투명한 사회가 이루어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부패지수는 더 높아만 간다고 하니 도무지 납득이 안된다.
답답한 마음을 진정하고 꼼꼼히 따져보니 몇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우선 시간의 문제가 있었다. 부패방지법을 만들어 시행한 지 몇 년 되지 않았고, 부정부패는 단시일 내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음으로 문화적 요인을 꼽을 수 있었다. 오래된 유교적 권위주의와 결합한 군사문화와 관료주의가 뿌리 깊은 부패문화를 형성한 것이다. 또 정치세력간의 타협에 의해 어정쩡하게 만들어진 부패방지법에도 문제가 있고, 각종 인허가제도를 둘러싼 불합리함 역시 부패문화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원인을 꼽을 수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사람이다.
얼마 전에 한 기관에서 중고생 3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식조사에 따르면 ‘뇌물을 써서라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응답한 학생이 27%, ‘감옥에서 10년을 살아도 10억을 벌 수 있다면 부패를 저지를 수 있다’고 응답한 학생이 17%에 달했다고 한다. 미래의 주인공인 청소년들이 이런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부패지수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몇 달 전 부패방지위원회가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주한외국인 투자업체, 외국공관 근무자 등 외국인 204명 중 50% 이상이 ‘한국의 공직부문이 여전히 부패’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은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이례적으로 11단계로 대폭 하향조정하면서 공직부패를 주된 원인으로 들고 있다. 이런 부정적인 현상을 단순히 한탕주의와 도덕적 해이에 의한 물질만능주의라고 개탄하고 말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부정부패와 쉽게 개선되지 않는 사회적 불평등구조 속에서 반칙을 해서라도 살아남으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결과이기에 그렇다. 부정부패에 대해 분노하고 적개심을 가지면서도 막상 자신의 문제로 다가오면 달리 생각하게 되는 필연적인 모순을 극복해야만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앞으로도 <영광21>은 건강한 지역사회의 밑거름이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씁쓸한 마음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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