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보다 건강하지 못한 신장을 가져 1주일에 몇차례 광주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투석을 받으러 다녀야했던 그녀는 어느 날 문득 중대한 결심을 한다. “내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살아있는 동안 보람있는 일을 하자.”
그때부터 그녀는 비디오를 보면서 수화를 배우며 스스로가 장애인이 됐다. 당시만 해도 영광지역에는 지금과 같이 수화를 배울 수 있는 수화교실이 없었기 때문에 1주일간 공부하며 모르는 단어를 모두 적어 일요일에 교회 목사님께 가지고 가 물어보곤 했다. 그러다 군청에서 수화통역사로 일하며 비장애인들에게 수화를 알리는 일에 앞장섰으며 지금은 수화통역센터에서 여전히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의 소통을 위해 고민하며 일하고 있다.
수화통역센터의 설립 초기부터 오늘날 이렇게 정착할 수 있게 될 때까지 항상 그녀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18년전부터 지금까지 수화통역센터 김정선(47) 팀장의 기나긴 이야기다. 이렇게 몇 줄로 표현하기에는 모자라지만 그녀의 인생은 영광지역 수화 보급의 발전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광군수화통역센터는 그녀를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다.
김씨는 “쇠약해진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손으로 장애인들의 입과 귀가 돼 주는 일이었다”며 “지금 생각해 보면 수화를 배우면서부터 내가 오히려 더욱더 큰 축복을 받은 것 같다”고 회상한다. 수화를 배우면서 신장이식을 통해 몸도 건강해지고 마음도 더 튼튼해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2007년 수화통역센터가 설립되면서 비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수화교실도 개강했다. 비장애인들이 수화를 배워야 장애인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또 18년전 배우고 싶어도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아 비디오를 보며 독학해야 했던 자신과 같은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은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는 현재 일하는 틈틈이 사이버대학에서 직업재활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직업재활사는 장애인들의 직업재활을 위해 상담, 직업능력 평가, 직업적응훈련 및 취업알선을 하며 전반적인 직업생활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그녀는 “당장 복지예산이 조금 더 들더라도 꾸준히 직업훈련을 시키면서 단계적으로 지원액을 줄이는 등의 현실적인 복지예산 투입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예산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현 장애인기초수급제도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다.
한때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살았던 그녀는 현재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의 설립과 장애인들을 위한 미래를 꿈꾸고 계획중이다.
힘들어도 꿈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는 그녀의 꿈은 언제나 아름답기만 하다.
이서화 기자 lsh1220@yg21.co.kr
김정선 <수화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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