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권력기관들이 국민에게 남긴 것
국가 권력기관들이 국민에게 남긴 것
  • 영광21
  • 승인 2013.06.20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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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원세훈 전국정원장과 김용판 전서울경찰청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한 것은 그 자체로도 큰 사건이다. 국가 권력기관인 국정원과 경찰이 대선에 개입한 꼴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부족한 수사, 불합리한 기소라고 비판받는 검찰의 결정에 “선거법 위반 적용은 비약”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적발부터 발표까지 무려 여섯달이 걸렸다. 현장과 혐의자가 처음부터 확보된 사건치고는 무던히도 길었다.
이 사건으로 형사처벌을 받게 될 사람 가운데는 당시 국정원장과 서울경찰청장이 있다. 국정원장은 선거개입행위의 최종 책임자이기 때문이고 서울경찰청장은 이 사건수사를 축소·은폐해 별거 아닌 일로 서둘러 끝내려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무슨 목적에서 그랬든 실로 안타까운 건 그들의 조직에 끼친 불명예와 오욕이다. 창설 이후 오랜 시행착오 끝에 그나마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던 국정원은 이번 일로 존재의 의미마저 의심받게 됐다. 야당은 국정원의 근본적 개혁을 벼르고 있다.

국정원사건이 남긴 뼈아픈 교훈은 국가의 일부 중추기관들이 아주 사소한 동기로 법과 규범을 팽개칠 수 있다는 제도적 취약성일 것이다. 사적이익에 골몰한 조직수장의 전횡과 독단을 견제할 내적시스템이 없다면 조 직 전체가 나락에 빠질 위험을 피할 수가 없다.

이른바 권력기관 수뇌부들이 혹시라도 잘못된 유혹에 빠져 조직마저 망치는 일을 다시 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기에 민주당은 대선 당시 상황실장을 맡았던 권영세 주중대사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폭로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당시 집권여당과 국정원, 경찰의 부정선거 삼각 커넥션이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민주당은 정작 선거의 책임은 묻지 않겠다는 뉘앙스다. 그저 국정원과 검·경이 개혁되기를 바란다는 투로 말하고 있다.

의혹을 제기한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17일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우리가 1월부터 (관련)제보를 받았으면서도 자제하고 있었던 것은 문재인 전 후보의 승복선언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과 대한민국 미래와 국가안정을 위해 억울하지만 여기서 자제하자고 했던 것”이라며 “이 정도 했으면 검·경찰, 국정원이 바로 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 개입한 경찰과 검찰은 어떤가? 우선 경찰은 신뢰는 커녕 오랜 소망이었던 검경수사권 분리문제에 입도 뻥끗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검찰은 어떤가? 조직의 수장이 잘못된 결정으로 조직을 잘못 몰고 가면 얼마나 상처받는지 통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번 일을 교훈삼아 경찰관이 상관의 불법·위법적인 지시나 감독을 거부하도록 만들자는 법안이 그래서 추진되고 있다.
이 사건수사를 매듭지은 검찰의 태도도 이런 지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핵심혐의자에 대한 불구속기소가 법무부장관의 시간끌기식 수사개입 때문이었다는 논란이 가시질 않는다.

선거사안이어서 수사에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론 정치검찰이란 멍에를 벗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다.
나라를 위해 중요한 임무를 국민으로부터 위탁받은 사람들이 하는 짓거리가 가히 꼴불견이다.
우리는 언제쯤이나 국회를 신임하고 경찰과 검찰이란 조직을 든든하게 믿는 날이 올 것인가? 국가는 국민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런 국민을 무시하는 태도는 근절돼야 한다.

박 찬 석 / 본지 편집인oneheart@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