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신은 사회주의, 영혼은 자본주의라는 소리를 듣는 중국인의 경제관념은 수천년 역사를 자랑한다.
신석기시대에 이미 조개껍질 따위를 화폐 대용으로 사용했고 금속화폐의 역사만도 2,500년을 상회한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갑부들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부에 대한 관심은 사마천의 <사기> ‘화식열전’이란 명편을 탄생시켰는데 부자들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자 중국인의 경제관 내지 치부관을 잘 보여준다. 사마천 이후 경제와 부에 대한 문제는 고지식한 유학자들에 의해 철저히 무시됐다.
하지만 삶의 실질적인 내용을 뒷받침하는 부에 대한 이들 지배층의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태도는 많은 비판을 받았고 지금 중국은 다시 부에 대한 특유의 관점을 유감없이 표출하고 있는 중이다.
중국 역대 10대 갑부들
그러다보니 중국 역사상 가장 돈이 많았던 갑부들에 관심을 돌렸고, 한 잡지는 급기야 역대 10대 갑부를 선정하기까지 했다. 재부를 절대적 가치로 삼았을 때 유근, 화신, 송자문, 오병감, 등통, 양기, 여불위, 석숭, 심만삼, 범려(도주공) 등이 최고 갑부로 꼽히는데 이들의 치부 내력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유근 : 16세기 초 명나라의 거물급 환관이다. 그의 치부는 대부분 뇌물이었다. 뇌물로 받아 챙긴 돈만 황금 33만㎏, 백은 805만㎏에 이른다.
이자성이 북경에 진입해 숭정제 1년 동안의 재정수입을 조사해 보니 백은 20만㎏이었다. 그러니 이 자가 챙긴 뇌물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화신 : 18세기 청나라 건륭제 연간의 거물급 탐관오리다. 다른 행적은 말할 것 없이 가경제가 즉위해 이 자의 재산을 조사해보니 건륭제 전성기 18년 동안 전국에서 거둬들인 조세수입과 맞먹었다.
그러니 ‘화신이 쓰러지자 가경이 배불리 먹었다’는 세간의 말이 하나 틀리지 않았다.
송자문 : 민국 연간의 유명한 집안인 송씨 집안 출신 송자문은 민국 재정부장으로 있는 동안 미국의 군수물자 지원을 책임졌는데 그 재산이 당시 첫손가락에 꼽혔다. 주로 횡령 따위로 배를 불렸다.
오병감 : 상호명 오호관. 청나라 광동 13행 이화행의 행주였다. 영국 동인도회사로부터 아편을 밀수해 치부했다. 1834년 재산이 2,600만원이었다고 하는데 서방의 학자들은 그를 두고 ‘세계에서 가장 큰 상업자본이자 천하제일의 대갑부’라 불렀다. 1843년 청나라 정부가 남경조약에 따라 300만원의 외채를 상환하려 했을 때 오병감은 혼자서 100만원을 떠안을 정도였다.
등통 : 서한 문제때 총애를 받은 자로 문제와의 특수한 관계를 이용해 주전업을 농단했다. 동광을 개발하고 이른바 ‘등통전’을 사사로이 주조해 천하의 갑부가 됐다.
문제의 아들 경제가 즉위하면서 총애를 잃고 재산은 몰수당하고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구차하게 살다 죽었다.
양기 : 동한시대의 외척으로 두 누이가 황후가 돼 권세를 누렸다. 양기는 이 권세를 이용해 재산을 긁어모으고 심지어 황제까지 독살해 ‘발호장군’이란 별명을 얻었다.
환제때 재산을 몰수당했는데 재산이 30억냥을 넘었다.
여불위 : 전국시기 위나라의 대상인으로 싼 물건을 비싸게 팔아 천금을 모았다고 한다. 여불위의 일생사업에서 가장 큰 성공은 뭐니뭐니해도 보잘 것 없던 진나라 공자 이인(자초)에게 투자해 왕으로 즉위시킨 일이다. 이로써 그는 상인에서 정치로의 역사적 전환을 성공적으로 실현했다. 진시황이 그의 사생아라는 설도 있다.
석숭 : 서진시대의 저명한 부자로 그 재산은 형주자사로 재임할 당시 주변의 객상들로부터 긁어모은 것이다. 그의 부를 둘러싼 가장 전형적인 고사라면 진나라 무제의 외삼촌 왕개와 부를 다퉈 승리한 것이다. ‘부가 나라에 맞설 만하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부를 밖으로 드러내지 말라는 교훈을 소홀히 했다가 끝내는 기생 녹주 때문에 가산을 탕진하고 객사했다.
심만삼 : 이름이 부富였다. 원나라 말기 명나라 초기의 강남 갑부로 주원장이 남경성을 수리하는데 무려 1/3의 비용을 개인이 부담했다.
그 손자가 남옥사건에 연루돼 운남으로 쫓겨나 군대에 편입되고 재산은 몰수당했다. 그의 재산은 주로 해상무역을 통해 치부한 것으로 역사상 가장 이른 국제무역상일 것이다.
범려 : 도주공陶朱公으로 불리는 춘추시대의 명인이다. 월왕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역사상 정치를 버리고 상업에 종사해 크게 치부한 인물의 전형일 것이다.
이 때문에 상인의 조상에서 상업의 신으로까지 추앙받고 있다. <사기>에 따르면 19년 동안 세차례나 돈
“돈은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본성)을 드러내게 하는 것이다.”
김영수 센터장
영광군청소년상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