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가 아닌 지도자로 제2의 꿈을 꿉니다”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 제2의 꿈을 꿉니다”
  • 영광21
  • 승인 2013.07.18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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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혜 <홍농초농구부 코치>

2000년 5월19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전국중고농구대회 여고부 결승전 경기종료 직전, 3점짜리 역전 슛이 터졌다. 말 그대로 극적인 역전승이었다.

3점짜리 버저비터를 성공시켜 농구 명문으로 알려진 숭의여고를 상대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우승을 따낸 법성고농구팀. 당시 18, 19세의 소녀들은 코트위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고 그 가운데 역전 슛을 넣은 홍농초농구부 조진혜(32) 전담코치도 있었다.

“어쩌죠? 오늘부터 대회 운영에 필요한 장비들이 들어와서 갑자기 바빠졌네요.”
전국남녀종별 농구선수권대회 초등부 경기가 홍농초등학교 체육관에서 치러져 홍농초농구부를 지도하는 조진혜 코치도 덩달아 분주해졌다. 이곳저곳에서 조 코치를 찾는 정신없는 와중에 그녀가 농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선수로 활약하던 때 그리고 홍농초 코치로 학생들을 지도하게 된 지금까지의 짧지 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염산출신인 조 코치는 초등학교 4학년때 육상경기에 출전했다가 ‘농구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고 이곳 홍농초등학교에서 농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홍농중과 법성고에 진학하며 농구선수로의 길을 걷게 됐고 각종 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조 코치는 “소속 선수가 7~8명뿐인 조그만 시골학교의 농구부가 지금도 농구 명문인 숭의여고를 이긴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며 “합숙하며 아침 6시부터 저녁 11시, 12시까지 밥만 먹고 운동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서 전국체전때는 결승전에 진출해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속에 아쉽게 준우승에 그치기도 했지만 시골의 조그마한 농구팀은 선수들의 땀과 열정으로 명문으로 입지를 다져갔다. 이후 조 코치는 프로선수를 거쳐 대학에 진학해 지도자 과정을 밟았다. 졸업후 서울에서 생활하던 조 코치가 고향이자 모교를 다시 찾은 것은 은사인 박현선 법성고 감독의 제의를 받고 부터이다. 가족과 떨어져야 해서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후배를 키우고 예전의 홍농초 명성을 되찾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조 코치가 처음 홍농초에 왔을 때에는 선수도 3명밖에 없어 존폐위기에 놓여 있었다. 짐을 풀자마자 3~4개월은 꼬박 스카우트만 하러 다닐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그 결과 현재 11명이라는 인원이 구성됐고 지난 4월에는 대한농구협회장배 전국초등농구대회에서 여초부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000년, 코트위 뜨거운 땀과 눈물을 흘렸던 19살 어린 소녀가 어엿한 지도자로 꿈을 꾸고 있다. 홍농초농구부가 단순히 1승을 거두는 팀이 아닌 오래도록 명문농구팀으로 기억되길 바란다는 ‘진혜의 꿈’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이서화 기자 lsh122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