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때문에 사마천은 2천년 동안 엄청난 비난에 시달려야만 했다. 점잖은 학자가 장사와 돈 이야기를 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금나라 때 학자 왕약허王若虛 같은 사람은 사마천이 “선비가 바위 동굴 따위에 숨어 지내며 명성을 드러내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결국은 부귀 때문이다”라고 한 대목을 시비삼아 “사마천의 죄는 죽음으로도 용서가 안된다”는 극언까지 일삼을 정도였다.
<화식열전>에 처음 등장하는 계연
<화식열전>이 유교의 정통주의에 매몰된 위선적인 지식인들을 얼마나 자극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달리 말해 사마천이 유교 지식인과 돈 문제라면 짐짓 나 몰라라 점잔을 빼는 자들의 위선적 내심을 통렬하게 까발렸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기도 하다.
<화식열전>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계연이다. 그의 내력은 분명치 않은데 순수한 사업가나 경영인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만 옛날부터 “연(계연)과 상(상홍양)의 속셈(계산)”이란 속담이 전해오는 것으로 보아 경제분야의 대표적 인물임은 분명하다.
월나라 왕 구천에 의해 범려와 함께 기용돼 월나라의 경제정책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월왕 구천은 자신의 실력을 냉정하게 판단하지 않고 강국 오나라와 싸워 크게 패해 회계산에서 항복을 한다. 그후 범려와 함께 3년 동안 오나라 왕 부차의 신변에서 온갖 궂은 일을 하면서 치욕의 나날을 보냈다. 이 때 월왕은 월나라 내부의 정치와 살림을 문종에게 맡겼는데 계연은 경제분야를 맡았던 것 같다.
당시 계연은 구천에게 재기를 위해 먼저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는 준비가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전쟁이 일어날 줄 미리 알면 대비를 잘 해야 하며 언제 어떤 물건이 필요한지도 미리 알아야 합니다. 시기와 쓰임 이 두가지가 잘 보이면 재물의 유무와 이동 상황을 미리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가뭄에 배를 준비하고 수해때 수레를 비축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재화를 운용하는 기본원리”라고 요점을 정리해 준다.
이런 기본원리를 바탕으로 백성들의 삶의 기본인 곡물가격을 일정 수준 안정적으로 유지할 것을 언급하면서 “곡가가 수준을 유지하고 재화가 공정하게 거래돼 시장에서 물자가 부족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이라며 경제가 치국의 도와 직결됨을 강조했다. 이것이 이른바 ‘경제치국’이라는 것이다.
장사에도 영혼이 있어야
이어 계연은 경제 전문가로서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데 자금(자본)과 재화(상품)의 관계론은 현대 경영이론 그대로이다.
“화물을 쌓아두는 이치는 좋은 화물을 보존하는데 힘을 쓰는 것이지 나쁜 화물을 축적해 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화물은 서로 교역하되 상하기 쉬운 화물을 팔지 않고 쌓아둬서는 안되며 또 비싼 화물을 오래 가지고 있어도 안된다. 화물이 남는지 모자란지를 알면 그것이 싼지 비싼지를 알 수 있다. 비쌀 대로 비싸지면 값이 내려가고, 쌀 대로 싸지면 다시 비싸진다.”
계연의 경영사상이 갖는 높은 수준은 상품의 귀천에 따른 변증법적 관계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다시 말해 상품의 가격은 시장에서의 교환과 공급·수요의 변화상황에 따라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비싼 것도 극에 달하면 헐값된다”
따라서 그는 상품의 과잉공급이나 부족한 상황에 대해 연구하여 물가가 오르고 내리는 기본적 규칙과 이치를 잘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한다.
그는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대쪽으로 이동한다는 원리와 시장교환의 일반적 규칙에 근거해 “비싼 것이 극에 이르면 헐값이 되고 헐값이 극에 이르면 비싸진다”는 과학적 결론을 얻어냈던 것이다.
이어 계연은 상품과 자본은 물처럼 원활하게 유통돼야 한다는 점을 결론적으로 강조하면서 그에 앞서 “비싼 물건은 쓰레기를 버리듯 내다 팔고 싼 물건은 보석을 손에 넣듯 사들여 한다”고 했다. 시장의 건전한 유통과 물가 조절까지를 염두에 둔 정말 귀중한 경제철학이 아닐 수 없다.
물건 값이 올랐다고 더 오르기를 기다리며 물건을 재여 놓아 물건 값을 더 올리는 행위나 값이 내렸다고 얼른 내다 팔아 값이 더 떨어지게 만드는 상행위는 옳지 않다는 것이다.
물건과 자본이 흐르지 않고 쌓여만 있을 때 물가는 불안해지고 경제는 침체되는 것이다. 그래서 계연은 비싼 물건을 쓰레기 내다 버리듯 팔라고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계연의 경제철학은 ‘장사에도 영혼이 있어야 한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겠다.
월나라는 10여년에 걸쳐 시행된 계연의 경제정책에 힘입어 나라는 부강해 지고 군대가 강해져 끝내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김영수 센터장
영광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