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요? 약먹기 위해 어쩔수 없이…"
"밥이요? 약먹기 위해 어쩔수 없이…"
  • 김광훈
  • 승인 2002.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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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가지 병에 5년째 혼자생활, 주변 도움과 사회보장 절실
정문택씨와 나눈 겨울 이야기
"어제밤 당뇨 수치를 보니까 68이었죠. 그래서 설탕을 몽땅 먹고 잠을 잤어요."
방에 들어선 순간 눈을 사로잡은 것은 이곳 저곳 흩어져 있는 약 봉지들이었다.

당뇨 위장 폐 신장 허리 결핵 등 매순간 엄습해오는 아픔들을 다스리기 위해 매끼니 때마다 7가지 병 25알이 넘는 약을 먹고 있었다.

"밥이요? 약을 먹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먹는 거죠. 살기 위해서…" 방한구석에 놓여 있는 밥상 위에는 아무런 반찬이 없었다. 그리고 돈을 빌려 겨우 10kg들이 쌀 한 포대를 마련했단다.

"주변 도움이 거의 없죠. 뭐 남 탓할 문제는 아니죠. 부모님이 병으로 돌아가신 후에 형제들도 전혀 연락이 없으니까요"

그는 혼자 생활한지 벌써 5년째다. 병환으로 부모님 상을 당한 후 나머지 4형제들은 모두 서울로 떠나 버렸다. 그리고 지금껏 연락한번 없단다. 그러면서도 "서로 연락돼봤자 가슴만 아프죠. 연락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나아요"하며 던지는 말끝에 슬며시 눈길은 작년에 놓은 전화기(353-9029)로 향하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는 바로 서울 생활에 뛰어 들었다. 공장 신문팔이 구두닦기 하루품팔이 뱃일 FRP물탱크 제작 등 않해본 일이 없었다. 그렇게 성실이 모은 9천만원과 그리고 얻은 당뇨와 합병증.

"금방이었어요. 병치료차 내려와 1억 정도 되는 돈을 병원비로 날리는 것은 정말 금방이었죠. 어떻게 모은 돈인데…"

온갖 병과 혼자라는 절망적 상황에 있었지만 젊다는 이유로 생활보호 대상자에서 제외됐단다. 그래서 병원비에 대한 혜택이 없었다. 그냥 온몸 바쳐 벌었던 돈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태풍에 지붕이 날아가 버렸죠. 매일 조금씩 스레트를 사다가 혼자 지붕을 고쳤어요. 그리고 의식을 잃어버렸죠. 깨어나 보니 14일이 지난 후였고 병원이더라구요"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든 상황에서 혼자 한 지붕 보수작업은 그에게 큰 무리였다. 하지만 더욱 마음 아픈 것은 병원 밥값이 없어서 퇴원할 수밖에 없었다고….

당뇨 수치가 너무 낮게 나올 때 그에겐 초콜렛 한조각이 삶을 이어준단다. 하지만 매달 생활보조비로 나오는 22만원은 전기 수도 전화비 내고 약값 조금내기도 너무 벅차다. 초콜렛 한쪽 사탕 한봉지 살 돈이 없다.

마냥 삶의 마지막 끄트머리를 붙들고 있던 그는 이제 43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