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최고의 미남 자도의 질투
춘추시대 최고의 미남 자도의 질투
  • 영광21
  • 승인 2013.09.0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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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천의 <사기>의 명구를 통해 배우는 삶의 지혜 26 - 중국 역사상 최고의 미남

중국 역사상 기록에 남은 최초의 미남자하면 춘추시대 정나라의 자도子都를 꼽는다. 그는 가장 오랜 시가집詩歌集인 <시경>에 등장할 정도로 당대 최고의 미남이었던 모양이다. 먼저 <시경>의 노래 한편을 감상해 보자.(‘국풍國風’의 ‘정풍鄭風’ 중 ‘산유부소山有扶蘇’)

산에는 부소나무
진흙펄에는 연꽃
자도는 안 보이고
만난 자가 미치광이

이 노래에 대한 해석들을 종합해 보면 대체로 이런 내용이다. 한 여자가 시집을 가는 길이다. 산에는 부소라는 작은 나무들이 보이고 진흙펄에는 연꽃이 피어 있는 것이 저마다 저있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중매했던 중매장이 말에 따르면 남편 될 사람이 자도처럼 잘생긴 미남이라고 했거늘 정작 만나보니 미친 놈 같더라.

요컨대 중매쟁이 말만 듣고 잘생긴 남편을 기대했는데 실제로 본 남편의 모습은 기대와는 영 어긋나서 원망스러운 심경을 미남자 자도를 빌려 이렇게 드러낸 것이다.

어쨌거나 자도는 춘추시대 정나라 사람의 노래에도 등장할 정도로 잘 생긴 남자의 대명사였던 모양이다. 자도의 미모는 근엄함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맹자조차 칭송할 정도였다.
먼저 맹자의 말을 들어보자.(‘고자편’ 상)

(소리를 듣는)귀도 그러하니 소리에 관한 세상 사람들이 (음악가) 사광師廣에게 기대하는 것은 다름아닌 세상 사람들의 귀가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눈도 그렇다. 자도라면 세상에 그 잘 생긴 미모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자도의 미모를 모른다는 것은 눈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말끝마다 인의도덕을 외치는 아성亞聖 맹자께서도 ‘자도의 미모를 모른다는 것은 눈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셨으니 자도가 대체 얼마나 잘 생겼길래 이럴까? 그리고 어떤 사람이었을까?

자도 행적의 재구성
자도의 행적에 관한 기본 기록은 <춘추좌전>(은공 11년조)이다. 이 기록과 춘추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동주열국지>를 참고해 그의 행적을 재구성해 보면 이렇다.
기원전 771년 주 왕실의 유왕이 총애하는 포사의 비위를 맞추려고 시도 때도 없이 봉화를 올려 주변 제후들을 희롱하다가 결국 융족의 침입을 받아 유왕이 피살당하고 도읍이 유린당하는 치욕을 당했다. 당시 주 왕실을 돕기 위해 달려온 제후는 정나라 환공이 유일했는데환공도 이 난리통에 죽임을 당했다.

정나라는 도읍을 지금의 하남성 신정 일대로 옮겨 국력을 재정비해 도약을 준비했다. 특히 장공은 주변 소국들을 정복하는 등 정나라의 위세를 크게 떨쳤는데 자도는 바로 정나라 최고 전성기를 구가한 장공 때 활약한 인물이었다.

전투로 발생한 영고숙 살해
자도는 외모만 잘생긴 것이 아니라 활쏘기 등 무예도 뛰어나 장공의 대부가 됐다. 기원전 712년 장공이 허나라 정벌에 나섰다. 출정에 앞서 장공은 조상의 사당에서 장병들에게 병기를 나눠 주었다.

당대 최고의 미남 자도는 아직 병기를 장착하지 않은 전차를 놓고 지방의 관리인 영고숙과 서로 가지려고 다투었다.
영고숙은 이 전차를 갖기 위해 자도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수레바퀴를 겨드랑이에 끼고 도망쳤다. 자도가 검과 창을 들고 뒤를 쫓았지만 잡지 못했다.

전투가 시작됐고 영고숙은 참신한 전차를 몰고 앞장서서 허나라 수도를 공격했다. 영고숙은 장공의 깃발을 들고 허나라 도성을 오를 참이었다.
이 때 자도는 공을 영고숙에게 빼앗길 수 없다는 강렬한 질투심에 성을 오르는 영고숙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영고숙은 화살에 맞아 거꾸로 성 아래로 떨어져 절명했다. 이것이 저 유명한 춘추시대의 전차 한대 때문에 일어난 피의 사건이었다.
장공은 그 뒤 영고숙을 쏜 자를 저주하는 제사를 올리게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자도가 어떤 처분을 받았는지는 기록에 없다.

흥미로운 사실은 <시경>을 비롯해 <춘추좌전>, 심지어 <맹자>에까지 등장하는 춘추시대 최고의 미남자 자도에 관해 사마천은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도의 치졸한 질투심에 불과한 이 사건을 기록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본 것인지 아니면 자도와 관련한 기록과 사건을 믿지 않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흥미로운 사건들을 비교적 많이 남긴 사마천인지라 다소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사기>에 기록되지 않은 미남자 자도의 질투와 그로 인한 영고숙 살해 사건을 잠깐 소개했다.

자도의 미모는 중국 역사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졌다.
고려시대 유학자인 이달충(1309~1385)은 <애오잠愛惡箴>이란 글에서 ‘자도의 잘 생긴 것이야 뉘라 해서 아름답다 하지 않겠는가’라는 문장으로 자도의 미모를 나타냈다.

김영수 센터장
영광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