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상자 -
▶ 대상 우마루내(인천시 남구)
▶ 금상 차행득(광주시 목련로)
▶ 은상 정성진(영광군 군남면)
이성수(광주시 남구)
▶ 동상 박복순(전북 장수)
전두례(영광군 영광읍)
정은지(광주시 남구)
김경옥(영광군 영광읍)
안선우(전북 군산시)
▶ 기타 입선 다수
심사평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문학에 대한 열망으로 순수한 생각들을 간직하고 있구나 라는 마음을 느낄수 있는 것을 작품을 대하면서 느꼈습니다.
하기야 이런 아름다운 자연의 신비로움과 그에 얽혀난 스토리들을 그냥 지나친다는 것은 상사화에 대한 예가 아니겠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왔다 그냥 가시지 않고 열망과 서정을 한아름 안고 돌아가서 식구들과 얘기 나누면서 펼쳐본 작품들이라 생각하면 어떤 작품하나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상은 정해져 버린 숫자여서 소식이 못가는 응모자들에는 정말 죄송할 것 같아 안타까움 뿐이었습니다.
한편이 아니라 2~3편 응모하신 분들께는 눈길을 좀더 준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것이 모두 고른 수준이었을 경우는 더 그랬고요.
올해는 수필을 보내오신 분들이 많아 그쪽에도 배려를 많이 했습니다.
인터넷 공모전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게 감사를 드리며 내년을 또 함께 하시기를 기대합니다.
심사위원 정형택 / 시인·한국문협 이사
대 상 /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 / 우마루내 / 인천 남구
붉은 꽃망울 터지는 소리에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나는 터무니없이 넓은 집에 혼자 누워서 자꾸만 이불을 뒤척이고 있었다. 보일러를 끝까지 올렸는데도 덥기는커녕 서늘하기만 했고, 베개는 왜 그렇게 크게 느껴지던지 옆자리가 허전해서 견딜 수 없었다. 텔레비전 위에 걸려 있는 영정사진을 보면서 나는 자꾸만 창밖을 내다봤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2년째 되는 날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조촐한 제사를 마친 나는 영광에 며칠 더 머물겠다고 바득바득 우겼다. 아직 팔리거나 허물어지지 않은 할아버지의 옛 집에 왠지 있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 아무도 찾지 않는 집이 쓸쓸해 보이기도 했고 할아버지 생전에 함께 했던 시간들이 계속해서 주춤거리며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도 했던 게 그 이유였다.
나는 그렇게 낡은 방에 누워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더듬게 됐다.
어둠에 눈이 익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수납장에 꽂혀 있던 검은 앨범이었다. 할아버지 집을 찾을 때마다 심심풀이로 넘겨보곤 했던 앨범에는 할아버지의 일생이 담겨 있었다.
영광에서 태어나 영광에서 자라고, 영광에서 연애하고, 영광에서 결혼하고, 영광에서 늙은 할아버지의 앨범에는 온통 영광을 배경으로 한 사진들이 가득했다.
해맑게 웃으며 브이를 그리기도 하고, 불갑산 낙엽 비를 맞으며 환하게 웃기도 하고, 흙투성이가 된 바지를 입고 바다를 배경으로 장난스런 포즈를 취하기도 한 할아버지는 앨범을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차례로 나이를 먹고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화면 전체가 붉은 꽃으로 뒤덮인 곳에서 찍은 할아버지의 연애시절 사진이었다.
“장모될 사람에게 인사를 하러 가는데 말이야, 그분이 생선을 그렇게 좋아하신다는 거야. 내가 또 영광 출신이란 얘기를 듣고 기대를 한껏 하셨단 말이지.
영광 하면 또 굴비잖아. 그 소리를 전해들은 날, 바로 아는 사람에게 가서 굴비를 몇 두름이나 샀는지 몰라. 그렇게 사가지고 뒷산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상사화를 꺾어서 굴비 사이사이 끼워 넣었어. 잘 보이고 싶어서. 예쁜 사위로 보이고 싶었거든. 그 길로 장모님 뵈러 가서 꽃이 주렁주렁 달린 굴비 두름을 내놓고 나니까 장모님 입이 옆으로 쭉 늘어나데. 그걸 보고 아, 이제 결혼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얼마나 행복하던지.”
간혹 흥이 날 때마다 해주던 할아버지의 상견례 얘기도 생각났다. 그때 할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랑이었다. 붉은 상사화가 특산물처럼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영광 땅에서 할아버지는 무지하게 예쁜 신부와 결혼식을 올렸다. 사진 속의 할아버지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듯 꽃처럼 웃고 계셨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새하얗고 마른 몸을 갖고 있던 할아버지의 신부는 몸이 약한 탓에 자주 앓았고 그게 큰 병으로 번져 자리에 누워 지내는 날이 많았던 것이다. 험한 일은 못하고 외출도 자주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할아버지는 내내 웃고 다녔다. 집안일이야 어차피 같이 하는 거고 결혼했으니 매일매일 함께 있는데 많이 돌아다니지 못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식이었다.
두 분은 매년 상사화가 필 때가 되면 그때서야 겨우내 외출을 했다. 연애 시절만큼 행복감에 젖어서 오랜만의 외출을 흠뻑 즐기며 사진을 찍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앨범에는 어느 장을 펼치든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웃는 모습이 닮은 행복한 부부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 몸은 갈수록 나빠졌다. 천성이 약했던 할머니는 독한 약과 오랜 투병을 견뎌내지 못했던 것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십대 중년 부부가 된 지 몇년이 지난 후, 할머니는 끝끝내 불갑산을 등지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상사화가 한창 피어나는 계절이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매년 가을이면 유난히 쓸쓸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큰 모양이었다. 혼자라도 꼬박꼬박 상사화를 보러 가는 할아버지를 알게 된 이후, 나는 매년 가을마다 할아버지에게 먼저 등산을 가자고 말하곤 했다. 꽃 보러 가요, 꽃이 그렇게 예쁘게 피어있대요!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해맑게 외치는 나를, 할아버지는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서서 카메라에 담기도 벅찬 붉은 꽃의 행렬을 오래오래 바라보시곤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이십 년도 더 지난 후였다. 한참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북망산천으로 접어든 두분을 두고 가족들은 하늘에서 두분이 마주치면 서로를 알아볼 수나 있을지 걱정이라고 농담처럼 내뱉었다. 설상가상으로 할아버지는 봄에 세상을 떠나셨다.
봄과 가을, 그리고 이십년의 세월. 함께 산 것보다 떨어져 있었던 날이 더 많았던 결혼 생활. 나는 장례식장에서 들은 언니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상사화가 무슨 꽃인지 알아? 꽃이 필 때면 잎이 져버리고 잎이 피어날 때면 꽃이 피지 못해서 끊임없이 엇갈리기만 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뜻해.
다시 바라본 창문에는 별들이 언뜻언뜻 빛나는 밤하늘이 손에 잡힐 듯 내려와 있었다. 낮에 불갑산에 올라가서 본 넓은 잎이 쭉 뻗어 있던 상사화들이 머릿속을 유영하다가 방 안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파릇파릇한 꽃들은 돌연 꽃대를 쭉 뻗어내더니 봉오리를 맺고 그것을 톡톡 터트렸다. 텔레비전 위에 얌전히 걸려 있던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은 조그만 바람에 반응하며 살짝살짝 흔들렸고 나는 내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어 눈을 깜박였다.
톡톡. 붉은 꽃망울이 터지는 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마치 꿈속에 있는 것처럼 몽롱해진 정신을 느끼며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하늘에서 만나 진한 포옹이라도 하고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 수상소감
9월이 시작되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곳이 불갑산이었다. 붉은 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을 풍경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자꾸만 잠이 오지 않았다. 밤이 되면 기차표를 끊어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새벽이 되면 번번이 그것을 어겼다.
월말이 돼서야 겨우내 할아버지 제사와 상사화 축제를 이유로 영광에 내려가면서 비로소 후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작 떠나지 못했던 것이 끝끝내 아쉽기도 했다.
영광 불갑산에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상사화가 가득 피어 있었다. 그것들을 보면서 꽃망울 터지는 소리와 한 세월 살다 간 소중한 사람을 떠올렸다. 들리지 않는 소리였고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손에 잡힐 듯 선명한 환영이었다. 너무도 명확해 잠이 오지 않아 홀린 듯 키보드를 두드렸고 그것은 한편의 수필로 탄생했다. 생생하게 재현해 내지는 못했지만 내 기억속에 존재하던 것들을 희미하게나마 끄집어냈다는 느낌이 들어 조금 뿌듯했다.
수상과 함께 예쁜 추억을 얻은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상사화 꽃밭에 오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상상을 한다.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이곳이 모두에게 복된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해본다.
금 상 - 상사화 / 차행득 / 광주광역시
불갑사 거님 길에 두견이 울어 울어
천년을 기다리다 모지라진 속눈썹
붉게 타는 그리움 향기만 그윽타
소슬한 달빛에 우두커니 등 기대어
뜬금없이 오실 길에 시간을 열어 놓고
임 오실 그 날 헤다 애먼 산만 지운다.
*거님 길 : 오솔길
■ 수상소감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남편의 근무지인 영광과 맺은 인연으로 짬짬이 산책을 하던 불갑사.
사계절 내내 오감을 자극하던 싱그러운 풀내음과 텃새들의 청아한 하모니는 연실봉의 소슬바람을 타고 내려와 고즈넉한 가을 산사를 붉게 물들였습니다.
9월이 되면 어김없이 나그네의 발길을 붙드는 상사화. 물큰 밀려오는 그리움에 대한 질펀한 가슴앓이를 하게 합니다.
사랑은 촛불처럼 자신을 태우는 기나긴 기다림이라고. 그 가슴 찡한 울림이 사무쳐 이 글을 낳게 되었나 봅니다.
서툴고 부족한 글을 고운 눈으로 살펴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리며 불갑산상사화축제 추진위와 영광21신문 오래오래 기억하렵니다. 감사합니다.
은 상 - 상사화 / 정성진 / 영광군
깊은사랑
억만송이 꽃으로 피워놓고
하루하루 가슴속엔
영혼을 담는다.
기다림에 지쳐 눈언저리 마다
핏빛 멍울이 져도
속 타는 가슴이야
그 누가 알 리가 있는가.
천년 기다림이
사랑보다 아름답다 하지만
한번쯤 돌아선 눈빛
마주하면 좋으련만.
내 돌아선 발길에
먼저 훌쩍
돌아서서 가는 발길.
천연 사랑이란
돌아서고 돌아오고
애틋함만 피어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