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자리에 오른 무정이 주변 대신들을 살펴봤으나 자신을 도와 대업을 이룰만한 인재가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무정의 권력기반이 취약해 믿고 맡길 측근이 없었다. 이에 무정은 한가지 꾀를 생각해냈다.
어느 날 대신들과 연회를 베풀던 무정이 갑자기 기절해 쓰러졌다. 무정은 사흘이나 지나서야 깨어나서는 대신들에게 이상한 꿈을 꾸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무정과 부열
“내가 누워있는 동안 하늘에 가서 천제를 만났다. 천제는 나더러 나라 일에 온 힘을 다하되 과거의 법속에 구속받지 말고 유능한 인재를 기용해 나라를 부흥시키라고 했다. 천제께서 떠나면서 ‘열說’이라는 이름을 가진 노예가 있는데 현명하고 유능한 인재라 특별히 내게 준다고 했다. 그대들은 서둘러 사방으로 찾아나서되 특별히 변방에서 고된 일을 하는 노예를 주의해서 살펴라.”(권3 은본기)
명령을 받은 대신들은 사방으로 찾아다닌 끝에 지금의 산서성 평륙현 동쪽으로 추정되는 부험傅險이란 지방에서 성을 쌓고 있는 ‘열’이란 사람을 찾아냈다. 열을 무정에게 데려가니 바로 그 사람이라고 했고 무정은 그를 재상에 기용해 상을 잘 다스렸다. 열을 부험이란 곳에서 찾았기 때문에 그에게 ‘부열傅說’이란 이름을 지어줬다.
그렇다면 무정은 부열이란 존재를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사마천은 “무정이 꿈에서 ‘열’이라는 이름의 성인을 만나 백관을 시켜 교외에서 찾게 했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기록들을 종합해 볼 때 대체로 이런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어린 시절 민간생활을 체험한 바 있는 무정은 그 과정에서 부험이란 지역에서 열이란 노예를 알게 됐다. 그와 사귀어보니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왕위에 오른 무정이 열을 기용하고 싶었으나 미천한 출신인데다 대신의 반대가 뻔했기 때문에 꿈에서 천제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꾸며 열을 초빙하도록 한 것이다.
소하와 한신
유방이 서한 왕조를 세우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세사람을 흔히들 ‘서한삼걸’이라 부른다. 이 중에서 한신은 명장으로 군대를 이끌며 열세에 놓여 있던 유방이 항우를 꺾고 최후의 승자가 되게 했다.
그런데 한신은 한 때 자신을 몰라주는 유방에게서 도망치기도 했다. 이 때 도망간 한신을 밤새 뒤쫓아 가서 그를 데려온 사람이 역시 서한삼걸의 하나인 소하였다.
한신은 유방 밑에서도 앞날이 여의치 않음을 직감하고 다른 곳에 몸을 맡길 결심을 했다. 그래서 어느 날 새벽을 틈타 행장을 꾸린 다음 말을 몰아 유방의 진영을 빠져 나왔다. 보고를 받은 소하는 깜짝 놀라 유방에게 알릴 겨를도 없이 부하 몇을 데리고 동쪽 문을 거쳐 한신의 뒤를 쫓았다. 소하는 피로도 아랑곳 않고 계속 뒤를 쫓았으나 저녁이 될 때까지 한신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소하는 포기하지 않고 달빛을 따라 계속 뒤를 쫓아 마침내 한계라는 시냇가에서 마침내 한신을 만났다.
소하 : 한 장군, 우리는 첫 만남부터 의기투합해 서로를 잘 알고 있는 사이인데 어째서 인사도 없이 슬그머니 떠나십니까?”
한신 : 재상의 은혜는 정말 잊을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한왕이 저를 쓰려 하지 않으니 제가 거기 남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소하 : 제가 다시 한번 한왕께 한 장군을 대장군에 임명하게끔 추천해 보겠습니다. 만약 이번에도 한왕께서 허락하지 않는다면 저도 장군을 따라 떠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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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은 소하의 진솔한 마음에 감동을 받아 다시 유방의 진영으로 되돌아왔다. 이틀이나 소하가 얼굴을 보이지 않자 소하도 도망친 줄 알았던 유방은 한신과 함께 돌아온 소하를 보고는 버럭 화를 내면서 “도망간 장군이 열은 넘는데 어째서 한신만 뒤쫓았는가?”라고 다그쳤다. 소하는 “장군감은 찾기 쉬워도 능력있는 장군감은 찾기 힘듭니다. 한신은 천하에 둘도 없는 인재입니다. 대왕께서 한중漢中에만 둥지를 틀고 있으려면 한신을 기용하지 않아도 무방하겠지만 천하를 얻으시려면 한신없이는 안됩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런 극적인 과정을 통해 한신은 대장군에 임명됐고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는 결정적인 전투는 거의 모두 한신이 지휘하게 된다.
현명하고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고자 할 때는 그 출신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인재임을 알게 된 즉시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를 찾아 대우해야 한다. 무정이 성공한 비결이다. 이럴 경우 인재를 기용하기 위해 어떤 술수를 사용했다 해서 굳이 나무랄 일은 아닌 것 같다.
인재가 인재를 알아본다고 했다. 훌륭한 인재라면 자신보다 뛰어나거나 특정분야의 전문가를 사심없이 추천할 줄 알아야 한다. 소하는 일찌감치 한신의 자질을 간파했으나 유방은 머뭇거렸다. 이에 소하는 강경한 태도로 유방을 설득했고 마침내 한신을 대장군으로 발탁하게 만들었다.
김영수 센터장
영광군청소년문화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