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평이 유방을 처음 본 것은 기원전 206년 홍문鴻門에서 였다. 당시 유방은 항우보다 먼저 진나라 수도 함양에 입성해 약법삼장約法三章 등 진나라의 가혹한 법을 모두 폐지하겠다는 공약으로 관중의 민심을 자기 쪽으로 한껏 끌었다.
항우는 거록에서 진나라 군대와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등 여러 차례 전투 때문에 함양 입성이 늦어졌다. 유방이 천하대권에 야심을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은 항우는 40만 대군을 몰아 유방을 단숨에 해치울 기세로 함양으로 향했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직감한 유방은 홍문으로 항우를 찾아가 싹싹하게 항복했다.
당초 책사 범증의 건의에 따라 홍문의 술자리에서 유방을 제거하려던 항우는 유방의 저자세와 숙백 항백의 권유에 마음이 약해져 유방을 죽이지 못하고 살려 보낸다. 이것이 저 유명한 ‘홍문연鴻門宴’이라는 세기의 술자리였다.
진평의 역공
당시 진평은 항우 밑에서 도위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 이 술자리에서 유방을 처음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항우의 우유부단함과 유방진영의 인재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는 얼마 뒤 유방진영으로 달려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진평은 유방을 만났고 그 후의 일은 지난 회에 소개한 바와 같다. 그 당시 진평은 항우와 유방의 장단점을 언급한 다음 항우 진영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이어 그에 대한 대응책까지 제시한다.
“지금 초나라(항우 진영)에 내분의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항왕의 강직한 신하라 해봤자 아보(범증), 종리매, 용차, 주은 등 몇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왕께서 수만 근의 황금을 내놓으시어 간첩으로 하여금 이간책을 쓰게 해 초나라 군신들의 사이를 떼어놓고 그들이 서로를 의심하도록 만들 수 있다면 항왕의 사람 됨됨이로 보아 틀림없이 그 말을 믿고 신하들을 의심해 서로가 서로를 죽고 죽이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 틈을 타서 군사로 공격하면 우리 한나라는 틀림없이 초나라를 격파할 수 있습니다.”
유방은 진평의 건의에 전적으로 공감해 황금 80만냥을 내주고는 진평 뜻대로 처리하게 했다. 이에 진평은 항우 진영의 문무관들을 금전으로 매수해 서로를 이간질시키기 시작했다.
여기서 하나의 사례를 통해 진평의 이간책을 엿보도록 하자. 한번은 항우가 유방 진영으로 사신을 보내 담판을 지으려 했다. 유방 진영에 도착한 항우의 사신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을 접대하기 위해 상다리가 휘도록 진수성찬을 차려 놓은 것이었다.
진평과 항우의 몰락
그런데 항우의 사신을 본 유방은 다소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난 또 아보(범증)가 보낸 사신인 줄 알았더니 항왕의 사신이잖아”라고 중얼거린 다음 산해진미가 차려진 상을 물리고 평범한 상을 다시 내오게 했다.
범증이 누구인가? 항우의 최측근이자 항우가 아보라는 존칭으로 부르는 브레인 아니던가? 지금까지 범증은 항우를 위해 갖가지 계책을 내고 조언해 왔다. 항우 진영의 실질적인 2인자였다. 진평은 바로 1인자와 2인자 사이를 이간시키려 했고 그래서 유방에게 일부러 이런 연기를 하도록 건의했던 것이다.
수모 아닌 수모를 당하고 돌아간 사신은 이 사실을 그대로 항우에게 보고했고 항우는 범증을 의심해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홍문연에서 유방을 제거하지 못한 이후 서먹해진 두 사람의 관계가 이 일을 계기로 급격하게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범증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리를 내던졌고 항우는 범증의 사직을 두 말 않고 받아들였다. 고향으로 가던중 범증은 울화통이 터져 그만 죽고 말았다.
진평은 이간책으로 항우의 오른팔을 잘라내는 데 성공했다. 이후 항우는 유방에게 계속 밀리다가 결국 자살로 초한쟁패의 대미를 마감하기에 이르렀다.
항우가 놓친 인재 진평은 항우의 라이벌이었던 유방에게로 건너와 두 리더의 장단점을 분석하는 한편 자신이 한 때 몸담았던 항우진영의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 대책을 제시했다. 그리고는 끝내 항우 진영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인재유출은 정보의 유출
진평의 사례는 인재의 유출이 얼마나 큰 파장과 결과를 낳는지 잘 보여준다. 인재의 유출은 곧 정보의 유출이다. 그 인재의 능력과 재능에 따라 정보의 양과 질이 결정된다. 항우는 진평이 공을 세우자 도위로 임명하는 등 우대했지만 진평이 패하자 그를 죽일 것처럼 분노했다.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직감한 진평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뻔했다.
항우는 한번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음으로써 인재를 도망가게 만든 것이다. 이는 항우가 진평의 진가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항우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동양의 전통적 리더십 항목중에 ‘엄징嚴懲’ ‘경벌輕罰’이라는 것이 있다. 실수나 잘못을 ‘엄정하게 징계하되 처벌은 가볍게 하라’는 뜻이다.
왜 잘못했는지를 정확하게 알게 하고, 그에 따라 혼을 세게 내되 실제 벌은 가볍게 내리라는 것이다.
그러면 인재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아서 자숙하되 가벼운 처벌에 리더의 아량과 관용에 마음으로 승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리더는 순서를 바꿔 ‘경징’ ‘엄벌’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인재는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그저 처벌만 세게 받는다고 불만을 품게 되고 결국은 리더를 떠나게 되는 것이다. 진평이 그랬고 그 후과는 항우의 몰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정도로 엄청났다. 항우는 진평을 놓친 것은 물론 범증까지 버리는 치명적인 우를 범했다.
김영수 센터장
영광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