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논리에 매몰된 정부의 편협성
형식논리에 매몰된 정부의 편협성
  • 영광21
  • 승인 2013.12.12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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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60조 제1항에는 “(국회는) 중요한 국제조직에 관한 조약,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돼 있다. 또한 통상절차법 제13조 제3항은 “국회는 서명된 조약이 통상조약에 해당한다고 판단할 경우 정부에 비준동의안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법치주의는 인권보장을 목적으로 모든 국가작용을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제정하는 법률에 의해 행하도록 하는 원리이다. 이에 비춰볼 때 헌법 제60조 제1항이 중요 조약의 체결 및 비준에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한 것은 단순히 조약의 절차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는 해당 조약이 국가의 중요 정책사항이나 국민의 권리·의무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는 경우에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적극적인 통제를 통해 국민적 합의를 형성하기 위한 실체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취지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는 국회가 입법과정에서 핵심 법률사항에 대해 지나치게 시행령 및 규칙에 위임하도록 한 입법편의주의와 정부가 법률의 위임한계를 넘어서는 시행령 및 규칙을 제정하는 위임입법의 한계 일탈이 결합돼 발생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특히 통상절차법 제9조, 제11조 등이 통상조약 체결에 따른 경제적 타당성과 영향의 평가를 통해 통상조약이 국내 경제, 국가재정, 국내 산업, 국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등의 검토를 거쳐 신중히 결정하도록 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절차를 이행하지 않은 채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등 부처 협의만으로 졸속적 결정을 내리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번 정부조달협정 개정안에는 앞서 언급한 대로 철도시설공단과 서울메트로 등 광역자치단체의 선로산업기관들이 모두 포함돼 철도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만약 이 개정안이 발효된다면 서울지하철 9호선에 대한 프랑스 베올리나(지분 80% 보유)의 선례처럼 프랑스와 독일 등 세계 최고의 철도기술을 보유한 국가들의 기술과 자본이 국내 철도산업에 쉽게 진입하게 될 것이다.

해당 분야에 외국기업이 진출할 경우 국내 철도관련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잠식되고 도시철도요금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국가경제와 국민의 중대한 재정적 부담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마땅히 국회 비준동의 대상이 돼야 한다.

따라서 국내법 제·개정 외에 별도로 국민의 권리, 의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을 규율하는 조약도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정부조달협정 개정의정서 시행과 관련돼 시행령, 규칙 또는 고시의 개정만을 통해서도 협정 개정사항을 반영할 수 있으므로 법률 제·개정이 필요치 않아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법제처의 심사결과는 행정편의적인 해석이라고 보여진다.

이처럼 한국 철도산업 및 일반 국민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 이번 WTO정부조달협정 개정의정서는 단순히 국무회의 의결이라는 행정편의적인 밀실행정에 의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심의를 거쳐 무엇이 국민일반의 이익에 보다 부합하는가를 신중히 가려 결정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 찬 석 / 본지 편집인oneheart@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