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신도 유방을 처음 본 것은 기원전 206년 홍문에서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진평은 당시 도위라는 벼슬에 있으면서 뒷간에 간다고 나간 유방을 찾으러 나간 당사자였다.
한신은 이 무렵 항우 밑에서 의장대의 한 사람으로 있었다. 덩치가 좋은 한신이었기 때문에 겉모습만 보고 의장대에 배치된 것 같다. 그 과정을 간단히 되짚어보면 이렇다.
기원전 210년 진시황이 죽자 천하정세는 소용돌이쳤고한신은 항우의 숙부 항량 밑으로 들어갔다. 그 때가 기원전 209년이었다. 항량이 정도 전투에서 전사하고 항우가 항량에 이어 초나라 군대를 이끄는 리더가 되자 한신은 항우 밑에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의장대에 배치됐다.
한신은 꿈이 큰 인재였다. 젊은 날 고향에서 빈둥거리고 있을 때 건달들과 시비가 붙자 사소한 치욕이나 시비 정도는 참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건달의 가랑이 밑을 기는 치욕을 감수할 정도로 심지가 굳었다.(여기서 ‘과하지욕袴下之辱’이라는 천하에 유명한 사자성어가 비롯됐다.) 의장대에 만족할 위인이 아니었다.
이에 한신은 기회를 틈타 몇차례 천하정세에 대한 분석과 대책을 항우에게 올렸다. 하지만 항우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러던 차에 유방이 한중漢中 지역에 봉해지자 항우에게서 도망쳐 유방을 찾아 왔다.
소하, 한신을 추격하다
유방도 항우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한신은 곡식창고를 관리하는 하잘 것 없는 자리에 배정됐다. 한신에게는 별다른 경력과 명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뜻하지 않은 실수로 목이 잘리는 형벌을 받게 됐다. 목이 잘리려는 순간 한신은 지나가던 유방의 측근 등공 하후영을 향해 천하에 뜻을 두고 있는 유방이 어째서 장사를 죽이려 하냐며 대들었다.
한신의 담력에 감탄한 하후영은 한신의 재능을 알게 됐고 이어 한신은 유방에게 추천했다. 유방은 한신은 식량과 말먹이를 책임지는 치속도위로 승진시켰지만 여전히 한신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다. 승상 소하는 한신의 진가를 알아보고 한신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 한편 유방에게 여러차례 한신을 추천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인내심이 바닥 난 한신은 다시 유방을 떠났다. 한신이 달아났다는 말에 소하는 유방에게 보고도 않고 말을 몰아 한신을 뒤쫓았고, 결국 한신은 다시 데려오게 되었다. 말도 없이 한신을 뒤쫓아간 소하에게 화가 난 유방은 자초지종을 물었고, 소하는 이 기회를 이용해 적극 한신을 추천해 마침내 한신을 대장군에 임명하게 만들었다.
유방, 한신을 얻어 재기하다
심복 소하의 추천으로 한신을 대장군에 임명하긴 했지만 유방으로서는 여전히 꺼림칙했다. 유방은 한신의 진짜 실력을 알고 싶어 그에게 천하정세에 대한 분석과 계책을 물었다.
당시 유방은 항우의 위세에 밀려 홍문연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다음 오갈 데 없는 한중에 처박히는 신세가 돼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장병들이 도망치는 등 정말이지 속수무책의 갑갑한 상황이었다.
한신은 먼저 유방과 항우의 상황을 냉정하게 비교하며 항우의 절대 우세를 상기시켰다. 그런 자신이 겪은 항우의 장단점을 치밀하게 분석해 보인다. 특히 항우의 단점과 항우 진영의 문제점을 집중 부각시키면서 유방에게 현상을 타파하고 재기하는 것은 물론 천하정세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며 용기를 불어 넣었다.
천하를 얻으려면 민심을 얻으라
이 자리에서 한신은 리더의 자질, 즉 리더십이란 면에서 항우의 인색함과 유방의 후덕함을 비교해 당장은 항우가 천하의 우두머리 행세를 하고 있지만 실제 기반은 허약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항우는 그 잔인함 때문에 민심을 잃고 있는 반면 유방은 ‘약법삼장約法三章’ 등과 같은 적절한 공약으로 관심을 민심을 얻었기 때문에 명분이란 면에서 항우를 앞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한신은 한중으로 들어올 때 불태웠던 잔도棧道를 수리하는 척 항우의 주의를 분산시킨 다음 요충지인 진창을 몰래 습격해 관중으로 다시 들어가자는 계책을 제안했다. 여기서 이른바 ‘명수잔도明修棧道, 암도진창暗渡陳倉’이라는 유명한 모략이 유래됐다.
유방은 한신의 건의에 따라 진창으로 나와 관중을 평정했고 이어 함곡관을 돌파해 위나라 땅과 황하 남쪽을 차지함으로써 재기에 성공했다. 이어 다른 지역들도 속속 유방에게 항복했고 이를 계기로 마침내 초나라의 서쪽 진출을 저지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천하형세는 초한이 팽팽하게 힘을 겨루는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이후 한신의 활약은 더욱 눈부셔 급기야 천하를 삼분할 수 있는 막강한 실력을 갖게 됐다. 깜짝 놀란 항우는 사람을 보내 한신에게 천하삼분을 제안했다.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한신은 유방과의 의리를 내세워 항우의 제안을 물리쳤고 초한쟁패의 승부는 이로써 사실상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항우가 잃은 아니 항우가 자기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한 인재 한 사람이 항우의 목을 죄어오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인재유출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김영수 센터장
영광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