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떠나온 고향이지만 언제나 마음은 영광에 머무른다”
“일찍 떠나온 고향이지만 언제나 마음은 영광에 머무른다”
  • 영광21
  • 승인 2014.01.0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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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길형 / 서울시 영등포구청장

메니페스토 실천본부가 선정한 공약이행 평가 최우수 지자체, 대한민국 인터넷 소통대상을 수상한 지자체, 권익위원회가 선정한 청렴도 전국 1위에 빛나는 지자체….

지난 4년여 동안의 서울시 영등포구를 수식하는 대표적인 말이다. 이밖에도 ‘상 복이 터졌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영등포구는 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우리 영광출신 조길형(57) 구청장이 있었다.

“영광읍 녹사리 490-1번지. 거기가 우리 집이예요. 아직도 형님하고 어머님은 거기에 살고 있어요.”
조길형 구청장은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있었음에도 고향의 집주소를 정확히 외웠다. 그만큼 언제나 고향을 잊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한다.
고향에서의 추억을 묻는 질문에 조 구청장은 “집 주변에 큰 소나무밭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솔방울을 따다 기름집에 팔아 용돈으로 쓰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웃는다. 50대 중반의 조길형 구청장도 어릴 적 추억 앞에는 천진난만한 소년으로 돌아간다.

돈도 벌고 공부도 하겠다며 16살 상경
10남매를 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조 구청장은 “서울에서 돈도 벌고 못다한 공부도 하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무작정 상경을 한다. 그때 나이는 겨우 16살. 어린 10대 소년이 혼자 몸으로 서울로 향했다니 꽤나 당차던 모양이다.


이렇게 겁 없이 상경한 조 구청장은 막노동도 하고 직장생활도 하며 땀과 현장의 의미를 배워나간다. 그리고 잠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다시 상경해 직장생활을 하다 한 유명 정치인의 말에 감동을 받고 정치에 발을 디뎠다.
어린 시절부터 주변에 고아원 출신의 친한 친구가 많았던 그의 꿈은 고아원의 선생님이 돼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또 자신의 어려움 속에서도 ‘위’ 보다는 ‘아래’를 보며 살아왔던 그였기에 정치인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인생의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1995년 영등포구의원으로 정치에 발을 들인 그는 구의원 4선을 거쳐 지금의 영등포구청장까지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기억하며 변함없는 길을 걸어왔다.

‘현장에 문제가 있고 현장에 답이 있다’
언제나 주민들의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머슴을 자처하는 그의 행보가 집약된 정치신념이자 철학이다. 지난 3년동안 영등포구청장으로 3년 동안의 운행거리가 지구 두바퀴는 족히 넘는다고 하니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 가늠하게 한다.

그럼에도 지난 정치인생을 돌아보면 후회되는 일도 있다고.
조 구청장은 “지역의 오랜 숙제인 재개발지역 문제 등의 장기적인 숙제를 풀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어렵고 아쉬운 부분이다”며 “그럼에도 무조건 현장행정을 펼치며 가장 가까운 곳에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지역발전에 이바지 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영광이 낳은 믿음직한 정치인
조 구청장은 비록 몸은 고향을 떠나 영등포구청장으로의 삶을 살고 있지만 언제나 고향을 잊지 않는 영광사람이다.
바쁜 일정에도 자주 고향을 찾는다. 또 매달 영등포구청 앞마당에서 영광지역에서 생산되는 농·특산물 장터를 열어 서울지역에 고향을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조 구청장은 “일찍이 고향을 떠나 타지생활을 했지만 그래도 언제나 마음만은 고향에 있다”고 말한다.
이어 “‘고향의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는 말이 있듯 영광지역에서 배출된 훌륭한 인재를 만날 때마다 정말 반갑다”며 “내 고향 영광이 더 발전하고 큰 인물이 더 많이 나는 곳이 됐으면 한다”고 애정을 담아 말한다.
“이렇게 지면을 통해 고향사람들에게 인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뜻밖의 ‘새해 선물’을 받은 것 같아 기쁘다”고 말하는 조길형 구청장.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그에게 고향 ‘영광’은 언제나 반가운 선물이다.
이서화 기자 lsh122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