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아버지 강 항 선생은 대단한 양반”
“우리 할아버지 강 항 선생은 대단한 양반”
  • 영광21
  • 승인 2014.01.2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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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원 / 강 항 선생 13세손

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붙잡혀 가서도 선비의 절개를 꺾지 않고 일본 병력의 배치 등을 나타낸 지도를 만들어 몰래 고국으로 돌려보낸 수은 강 항(1567~1618) 선생.

불갑면이 고향인 선생을 기리는 내산서원 강 항 선생의 초상화 앞에 13세손 강종원(80) 어르신이 섰다.
강 어르신은 “이 초상화가 우리 할아버지의 모습을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며 “오른쪽 뺨에 움푹 패인 상처가 있는데 포로로 잡혀가던중 자결하려 배에서 뛰어내린 할아버지를 일본군이 갈고리를 이용해 구하면서 생긴 상처이다”고 소개한다.

여든의 노인이 그보다 훨씬 젊어보이는 초상화를 두고 ‘할아버지’라고 칭하는 것이 조금 어색하지만 그 호칭에는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던 선조에 대한 존경심과 자부심이 묻어난다.

강 어르신은 종손은 아니지만 광주에서 사업을 하는 종손을 대신해 내산서원을 관리하고 이곳 서원에서 1년에 몇차례씩 열리는 제사를 돕는 일을 한다. 불갑면 금계리에서 태어나 마을의 터주대감으로 살아온 강 어르신은 누구보다 강 항 선생을 잘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강 항 선생의 일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한 전시관을 둘러보며 강 어르신은 이야기보따리를 한가득 풀어 놓는다.
강 어르신은 “우리 할아버지가 큰 벼슬을 한 것은 아니지만 포로로 있는 동안 일본에 관한 정보를 수집해 대응할 수 있도록 왜군의 위치 등을 기록한 지도를 만들어 임금에게 올린 것으로 유명하다”며 “똑같은 지도를 만들어 3명의 사람에게 나눠서 보냈는데 중국사람에게 전한 것이 결국 임금에게 전해져 관리들이 돌려 봤다고 하더라”고 설명한다.

4살에 글을 깨우친 강 항 선생을 보러 지금의 전남도지사격인 전라감사 신백록이 일부러 찾아 온 이야기부터 일본의 성리학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에 대한 설명, 끝내 조선으로 돌아와서는 큰 벼슬을 고사하고 후학을 양성했다는 이야기까지 어찌나 재미있던지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를 정도로 강 어르신은 뛰어난 입담꾼이다.

“불갑면 금계리 터주대감으로 농사도 짓고 짐승도 키우면서 살고 있다”는 소개와 달리 강 어르신은 젊은 시절 오랫동안 정당생활을 했다. 또 오랫동안 금계리 새마을지도자로도 활동했다고.
비록 종손은 아니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내산서원을 관리하고 중요 행사 등도 꼼꼼히 챙기는 강 어르신.
“내가 우리 할아버지와 함께 사진을 찍게 됐네”라고 기분좋게 강 항 선생의 초상화 앞에 선 강 어르신은 환하게 웃었다.
이서화 기자 lsh1220@yg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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