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의 살맛을 잃게 하는 사법부의 판결
서민들의 살맛을 잃게 하는 사법부의 판결
  • 영광21
  • 승인 2014.03.3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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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벌금을 대신하는 하루 노역의 대가가 5억원. 254억원의 벌금 판결 받은 전대주그룹 허재호 회장이 사흘전 광주교도소 노역장에 유치됐다.

노역장 유치의 궁극적 목적은 피고인이 벌금을 납부하도록 강제하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 형법은 벌금을 내지 않는 사람에 대해 3년까지 노역장에 유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2010년 광주고등법원은 허씨에게 254억원의 벌금형을 선고하면서 노역장 유치일수를 불과 50일로 정했다. 이 판결은 이후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노역장에 유치된 허 씨는 하루에 5억원, 특히 유치된 첫날은 밤 11시에 들어가면서 한시간에 5억원을 버는 꼴이 됐다. 우리 같은 서민들이 대부분인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이다.
2012년 광주고등법원은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피고인에게 하루 만원씩 환산해 노역장에 유치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같은 법원에서도 최고 5만배의 차이가 난다. 벌금액과 노역장 유치일수를 정할 때 피고인들의 경제적 능력을 고려한다고 해도 노역장 유치에 관한 판결들이 얼마나 불균형한지를 보여주고 있는 꼴이다.

‘법은 99%의 상식과 1%의 법률지식’이라는 말이 있다. 올바른 판결은 될 수 있는 한 국민의 상식과 법 감정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국민의 상식에 맞지 않아도 너무나 맞지 않는다.
사법부에서는 이러한 판결이 이뤄진 경위를 조사하고 벌금형과 노역장유치일수에 대한 양형기준의 설정 등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형 집행을 지휘감독하는 검찰도 하루빨리 허 씨에 대한 노역장 유치의 집행을 정지하고 대신 허 씨의 은닉재산을 강제집행하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나아가 벌금형과 노역장유치의 집행 전반에 대한 개선방안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노역 일당 5억원’ 논란을 일으킨 허재호 전대주그룹 회장 사건을 계기로 대법원이 환형유치 제도에 대한 개선안 검토에 나섰다. 환형유치는 벌금을 내지 못하면 그 대신에 교정시설에서 노역을 하는 제도다.
형법 제69조에 따르면 벌금은 판결 확정일로부터 30일 내에 내야 한다. 이를 내지 못하면 1일 이상 3년 이하의 기간 노역장에 유치돼 숙식을 하며 작업을 해야 한다. 문제는 현행법상 노역장 유치기간에 3년이라는 제한규정이 있다는 점이다.

통상 일반인은 노역 일당이 5만원선에서 정해진다. 그러나 벌금형이 무겁게 내려지면 노역의 일당 액수도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는데다 법원이 이를 재량으로 결정할 수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수사과정에서 체포돼 있던 하루도 노역장 유치기간에 포함됐다. 지난 22일 노역장에 들어가 벌써 사흘이 지났기 때문에 허 전회장은 이제 남은 46일만 노역하면 벌금을 모두 탕감할 수 있게 됐다.

재력가가 확정된 벌금을 별다른 사유없이 내지 않은 것도 모자라 일반인이라면 평생 만져보기도 어려운 액수의 벌금을 한달 보름만 지나면 모두 갚게 되는 것이다. 이마저도 공휴일을 빼면 실제 노역장에서 일하는 기간은 33일 밖에 되지 않는다.

1심은 허 전회장의 노역을 일당 2억5,000만원으로 책정했고 항소심을 맡은 광주고법에서는 액수를 더 높여 일당 5억원으로 결정했다. 노역 일당 5억원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높은 액수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법원 판결의 적정성을 놓고 비난이 쏟아졌다. 비난에서 그쳐서는 안되고 반드시 적절한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참으로 더럽고 살맛이 나지 않는다.
박 찬 석 / 본지 편집인oneheart@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