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동갑이라서 싸움꾼중에서도 대장이에요.”
보슬보슬 봄비가 내려 축축하게 젖은 논둑길을 한 우산을 쓰고 걸으며 백종덕·김실영 부부는 툴툴거렸다. 그러면서도 부인 김실영씨가 남편 백종덕씨의 팔에 살포시 팔짱을 낀 채로 걷는 부부의 뒷모습에서 무심한 듯 서로를 향한 애정이 묻어난다.
하루가 멀다고 싸움을 한다는 동갑내기 이들 부부가 백수읍 영산성지고등학교 바로 옆집으로 이사 온 지도 어느덧 4년째.
남편 백씨가 다니던 회사에서 정년으로 퇴직하면서부터 바로 짐을 싸서 그의 고향인 백수로 왔다.
백수읍 길용리가 탯자리인 백종덕(63)씨는 30대 초반에 고향을 떠나 서울 등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정년퇴직했다.
한진그룹의 자산을 관리하는 기업인 정석기업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노조위원장으로 3차례 당선돼 14년 동안이나 노동운동을 했다.
한국노총연합 노동조합연맹 서울조합본부 부의장을 맡기도 하는 등 열성적인 노동운동가였다.
노동운동가 초보 농사꾼으로
다시 돌아온 고향은 여전히 포근했다.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고 시간에 쫓기던 도시생활과 달리 여유로웠다. 노조위원장으로 매일 저녁 사람들을 만나며 술잔을 기울이던 것이 일상이었던 그가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여유가 생겨서인지 몸무게도 10㎏이나 줄었고 혈압약도 먹지 않아도 될 만큼 건강해졌다.
그러나 농사에 생초보인 백씨부부의 농사일은 그리 녹록치만은 않았다.
전북 군산에서 정미소집의 딸로 태어나 예순이 넘어서야 처음 농사를 지어 봤다는 부인 김씨는 “우리요?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얼마나 잘 됐겠어요? 양파를 심었는데 다른 사람들 양파는 동글동글 큰데 우리 양파는 꼭 주먹만 해요. 제때 비료를 줘야 하는데 우리는 그걸 모르니 그럴 수 밖에…. 수박도 심었는데 배가 갈라져서 못 팔고 배추 4,000평은 배추값이 떨어지는 바람에 그대로 갈아엎었지”라고 고개를 젓는다.
백씨는 올해부터 영광군귀농·귀촌인협회장을 맡아 행정관청과 귀농·귀촌인들과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그 역시 지난 몇년은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터라 누구보다 귀농인들의 어려움을 더욱 잘 안다.
백씨는 “정부에서 귀농인에게 농토 구입자금으로 3% 금리로 융자를 해주고 있는데 많은 귀농·귀촌인들이 정착하고 몇 년간은 수입이 거의 없어 이자마저도 빚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며 “지자체에서 귀농인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때까지 1%의 저리융자로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한만큼 얻는 것이 ‘농사’
백씨부부는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지난해부터는 농사로 어느 정도 수입을 얻고 있다. 담배, 양파, 고추 외에도 항산화물질이 많이 함유돼 있어 약용으로 쓴다는 아로니아 재배에도 열심이다.
봄비를 머금고 싹을 틔우고 있는 아로니아 묘목과 담배 잎을 보며 백씨 부부는 활짝 웃었다. 일한 만큼 딱 그만큼만 돌려주는 정직한 땅에서 짓는 서투른 농사는 이들 부부가 고향에서의 행복한 노년을 보내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이서화 기자 lsh122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