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김희주(53)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저 멀리서 4륜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오는 아내를 발견했다. 큰 키에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데다가 선글라스까지 멋지게 착용한 아내 최윤옥씨는 백수읍 지산리 미리내마을의 멋쟁이중에 멋쟁이다.
경기도 성남에서 25년 동안 대형 화물차량 기사로 일하다 4년전 고향으로 돌아온 부부는 쌀, 보리, 감자, 양파, 상추, 열무 등 논밭농사와 함께 시설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논과 밭은 3만5,000평, 하우스도 4,000여평에 이를 정도로 귀농인 가운데서는 꽤 큰 규모의 농사를 짓고 있다.
지네가 나타나던 밤의 악몽
김희주씨는 “도시에서 계속 운수업에 종사하면서는 노후준비가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라며 “그래서 아내에게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오랫동안 함께 고민한 끝에 짐을 쌌죠”라고 이야기한다.
남편 김씨는 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따라 20대시절에도 농사일을 해 본 경험이 있어 농촌생활에 비교적 쉽게 적응했다. 부모님이 경작하던 땅도 있었고 같은 백수지역에 살며 농사를 짓는 동생의 도움도 컸다.
그런데 서울에서 태어나 농촌생활을 전혀 모르던 아내에게 이사온 뒤 처음 몇 달은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최윤옥씨는 “집 주변에 대나무밭이 있다보니 지네가 많아서 집안까지 기어 들어오곤 했어요. 지네가 나올 때마다 일하고 있는 남편한테 울면서 전화했어요. 오죽하면 다시 서울로 가겠다고 했다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적응이 돼서 혼자서도 잘 잡아요”라고 활짝 웃는다.
그러면서 “여기 내려오기 전에는 논두렁에서 노래만 부르라고 하더니 지금은 안하는 일이 없다”고 말하며 남편을 향해 장난스럽게 눈을 흘긴다.
부부가 느끼는 농촌생활의 어려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은 애써 기른 농산물의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양파가격이 폭락해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사가는 사람이 없어 판로확보에도 애를 먹었다고.
김씨는 “대농가는 도매상인들과 연결돼 있어 가격이 비싸던 싸던 판매는 할 수 있는데 우리같은 중소농가는 판로확보와 제값 받기가 어려운 실정이다”며 “우리는 이곳이 고향이고 농사를 전혀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나마 사정이 괜찮지만 많은 귀농·귀촌인들은 더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나 지자체에서 기초농산물수매제도를 통해 시장도 안정화시키고 농민들의 안정적인 소득보장에도 도움을 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부부는 5년 정도 기반을 닦은 후에 시설하우스 사업을 계획중이다. 그러기 위해서 더 일찍 일어나 더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사진촬영을 한다는 말에 “여기 오고사이가 별로 안좋은데”라며 쭈뼛쭈뼛 서로에게 기대는 부부는 결혼한지 30년차가 넘지만 영광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신혼부부를 보는 것 같다.
이서화 기자 lsh122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