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침마다 쟤네들하고 이야기를 해요. 얼마나 예쁘고 행복한지 몰라요.”
환갑을 훌쩍 넘어 손자손녀가 4명씩이나 있는 이영순(63)씨는 소녀같은 웃음을 지었다. 꼭 사랑에 빠진 처녀처럼 백수읍 장산리로 귀농하고 지난 1년의 하루하루가 그녀에게 설레임이 가득한 시간들이었다.
진도처녀인 이영순씨와 광주총각인 박정옥(66)씨는 서울에서 처음 만나 결혼했다. 부부는 서울에서 생활하면서도 언제나 농촌생활을 꿈꿔 왔다. 그래서 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 일찍이 이곳 백수읍 장산리에 농사용 부지를 마련해놓고 귀농을 계획했다. 오랫동안 귀농을 준비해 온 것에 비하면 농촌에서의 행복한 생활을 실천에 옮기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린 셈이다.
부부는 “오래전부터 농촌에서 살려고 준비를 해왔는데 자식들 기르고 바쁘게 살다보니 조금 늦었네요”라고 웃는다.
남편 박정옥씨는 본인을 소개하며 “아직 잉크도 안 말랐다”고 입담을 자랑한다.
서울시 양천구의 제5·6대 의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다 지난 6월30일을 끝으로 임기를 마무리하고 백수읍으로 전입신고를 해온지 얼마 안됐다는 뜻이다. 지난 8년여간의 의정활동을 유쾌하게 소개한 것이기도.
아내 이씨는 “아이들 기르느라 귀농을 미뤘는데 글쎄 이 사람이 구의원으로 당선되는 바람에 더 늦어졌다”며 “그래서 이러다 안되겠다 싶어서 내가 1년 정도 먼저 와서 자리를 잡았는데 남편은 온지 한달도 채 안됐다”고 말한다.
부부의 꿈은 보다 전문적이고 기계화·기업화된 농촌을 일구는 것이다. 일찍이 귀농을 준비해오면서 계획했던 것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 현재 실험적으로 아로니아, 구기자 등을 기르고 있다. 그러나 막상 부부가 마주한 농촌현실의 벽은 높다고.
남편 박씨는 “내가 여기에 온지 몇일 안됐지만 농촌은 유통구조 등의 문제점이 많은 것 같다”며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농축산부 장관의 취임사가 유통구조 혁신이었는데 지금까지 제자리이다”고 비판했다.
박씨는 “기계화, 기업화된 영농은 판로확보가 우선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며 “얼마전에는 양파값이 폭락해 이 같은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는데 농민을 위해 존재하면서 정부의 많은 지원을 받는 농협 등이 제역할을 못해주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 극동대학교 경영학부 외래교수 등으로 활동했던 터라 그가 피부로 느낀 농촌의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의욕 넘치는 박정옥씨와 농사가 마냥 즐겁고 행복하다는 이영순씨는 잘 어울리는 한쌍의 초보농사꾼이다.
이들 부부가 살아갈 영광의 내일이 궁금해진다.
이서화 기자 lsh122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