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가 천일염 제값 받는 날을 꿈꾼다
생산자가 천일염 제값 받는 날을 꿈꾼다
  • 영광21
  • 승인 2014.09.0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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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염산면 탁정희·이명자씨 부부

염산면 신성리 탁정희·이명자씨 부부가 사는 집 앞마당에 서면 염전이 한눈에 들여다보인다. 드넓게 펼쳐진 염전을 바라보고 있자면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다. 그러나 정작 집주인인 탁정희(49)씨의 마음은 편치 않다. 지난 18일 새벽 영광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는데 염전도 비를 피하지 못했다.

탁정희씨는 “염전은 물론 소금보관창고에도 물이 들어와 피해가 무척 큽니다”라고 무겁게 말을 이었다.
탁씨는 삼성전자에서 휴대폰 등 전자제품에 입히는 색상을 연구하는 일을 했다. 회사가 중국으로 이전하고 어렵게 적응해 9년째 살고 있던 그는 회사가 다시 인도네시아 등으로 이전을 계획하면서 사직서를 제출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적잖은 나이에 또 다시 타국에서 적응할 생각에 답답하기도 했고 마음 한구석에 언제나 그리움이었던 고향행이었다.


그림 잘 그리던 소년 광주로 가다
염산중학교에 재학중이던 탁씨는 전국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을 정도로 어릴 때부터 그림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다.
탁씨는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광주지역의 유명 미술학원 옥상에서 살면서 학원청소와 관리를 하는 대신 학원비를 내지 않고도 미술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어린 나이에 타지에서 혼자 생활하면서도 그림에 대해 식지 않았던 그의 열정은 각종 대회에서 큰 상을 받게 했고 덕분에 장학금을 받고 조선대 서양학과에 차석으로 입학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려운 집안사정으로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없어 일찍이 유명 페인트 회사에 색상연구원으로 취직한 그였다.

그의 부친은 제2·3대 염산면장을 지내고 염산중학교의 전신인 천보중학교 교장이었던 고탁연호씨인데 정희씨가 학교에 다니던 때에는 가세가 기울어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일찍 떠나온 고향이었지만 친구들과 재미있게 뛰어놀던 기억은 생생했다.
탁씨는 “제게 고향 염산은 언제나 따뜻하고 즐거운 곳이었어요”라며 “처음에 아내가 귀향하는 것을 반대했지만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온 셈이죠”라고 말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탁씨부부는 노모와 함께 살며 <해창천일염>이라는 상호로 천일염 생산자들이 제값을 받고 소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중간 유통업을 하고 있다.

염전에서 다시 꽃피우는 꿈
본래 염전부지를 구입해 직접 소금을 생산했던 탁씨는 외부 도매상인들에 의해 소금값이 형편없는 수준으로 결정되는 것을 보고 그가 직접 유통업에 뛰어 들었다.
탁씨는 “천일염 생산자들이 판로가 도매상인들로 한정되다보니 생산비에도 못미치는 헐값에 판매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모든 생산자들이 노력하고 고생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염산 등 영광지역에서 생산되는 천일염도 품질이 뛰어난데 전국 최고로 꼽는 신안천일염이 품질이 뛰어난 것보다 지자체에서 홍보를 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영광의 대표적인 특산품인 굴비를 염장하는 천일염과 함께 잘 홍보해 영광산 천일염을 널리 알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서화 기자 lsh122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