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려상 - 유혹 - 영광 불갑산 상사화 축제장에서
강태민 / 광주광역시 광산구
길다란 속눈썹
가녀린 몸매
그윽하게 눈을 감은
저 여인네
나부끼는 치맛자락 끝에
불씨가 있나
다홍치마 넘실대니
온 산자락에 불이 붙네
이내 마음에도
빠알간 횃불이 이네
어서 오라며 레드카펫 깔아
손짓하는 그녀는 상사화
그 유혹 뿌리치지 못해
나도 몰래 뜨거운 네품으로
어느새 달려오고 말았구나
불갑사 꽃무릇(상사화)
유희영 / 경기도 고양시
불갑사에 꽃 잔치 벌어졌다
온 산골이 빨간 꽃불로 피어난 초가을
불법으로 환생한 저승영혼들
활짝 꽃잎 뒤집고
긴 더듬이 펼쳐 나비가 되었다
이루지 못한 사랑 찾아
이 산 저 산 날아다니고픈
꽃무릇
꽃길에 스님 한 분 기타 치며
‘꽃밭에서’를 부른다
배서방의 깜짝 이벤트
배화수 / 광주광역시 서구
한동네에서 네 자매가 이웃하며 산지가 5~6년째 되나보다. 모이자고 될 일은 아니지만, 이사를 하면서 언니 혹은 동생이 사는 동네를 우선 고려한 우애의 결과가 아닌가도 싶다. 손위 처남과 두 자매를 더해 처가 형제는 1남 6녀다. 그 시절에는 드물지 않은 식솔이기도 하지만 흔하지도 않은 대가족이다. 열외 없이 모이는 가족행사 때면 가히 인파 수준이다. 그렇게 모여 사는 자매들끼리 일상이 된 일중에 하나가 복면을 하고 가정사를 모의하는 아침걷기 운동이다. 그랬다. 꼭 운동만이 목적이 아녔다. 둘째 형부 금연결심이 작심삼일로 끝났다든가, 군대 간 조카가 내년 초면 제대를 한다든가, 장모님 생신 축하모임 음식점을 결정하는 등…. 오프라인 소식통이요, 가정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내무장관 협의체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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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아침, 평소보다 30여분 일찍 서둘러서 아내와 처형들을 모시고 영광 불갑사로 향했다. 예열이 덜 된 아침햇살은 아직 끝이 무뎠고 습기를 털어낸 식전 바람은 몸놀림이 가벼웠다. 추수를 앞둔 한산한 국도변 들녘도 넉넉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한 가지 아쉬운 건 고향을 오가는 낯익은 길이다 보니 여행이 주는 객창감이 덜 했다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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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갑사 경내로 가는 삼거리에 이르자 어림잡아 예닐곱 마지기는 족히 되는 대지를 경작수준으로 상사화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마치 특별히 마련된 대종상 시상식 야외광장을 온통 레드카펫으로 장식한 느낌이다. 꽃밭에 들어서면 누구나 시상대에 오르는 주연 배우가 따로 없다. 셔터만 누르면 어디나 작품이 되고 누구나 작가가 된다. 단호한 의지가 아니면 발길을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꽃을 기다리다 잎이 진 자리에서 다시 잎을 부르는 꽃 상사화. 아름답기보다 두견새 울음을 닮은 꽃 상사화. 해마다 붉기를 더해 가는 듯 했다.
사리탑을 지나 산사면을 타고 흐르던 햇살이 잔잔하게 고인 불갑사 경내로 들어섰다.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파하면서 최초로 이 땅에 창건했다는 설도 전해지는 불갑사다. 그래서인지 사찰 규모에 비해 유서 깊은 풍모가 느껴졌고, 법당을 빠져나온 목탁소리 마저도 고색적이였다. 불갑사는 천연기념물인 참식나무 자생 북한지로도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백제의 승려 정운이 인도의 공주와 이별의 슬픔을 나누면서 가져온 씨앗을 심었는데 그것이 참식나무였다는 것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상사화의 꽃말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러브스토리다.
행보를 달리한건 나만이 아닌 듯 했다. 각자의 심미안에 따라 흩어졌다 경내를 두어 바퀴 돌면서 모두 모였다. 이구동성으로 ‘너무 좋다’를 연발했다.
분주했던 시선이 다소 진정되자 먹거리장터를 지나면서 무덤덤했던 후각이 그제야 허기를 몰고 왔다. 발길을 붙잡는 꽃길을 애써 외면하며 내려왔다. 곁눈질로 보는 꽃밭도 황홀하기는 매한가지다. 음식 준비에 부산한 한 음식점에 자리를 잡고 파전과 두부김치 그리고 대마할머니막걸리 한병을 주문했다. 딱 한잔 정도는 기대하고 주문한 막걸리였는데 운전할 사람이 무슨 술이냐고 정색이다. 할 수 없이 물 컵을 들고 건배를 했는데, 원샷 끝에 캬~ 소리나 마시든지.
관람을 마치고 귀가하는데 도로는 이미 4~5km 전부터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발 묶인 귀향차량을 보며 역귀성하는 기분이 들었다. 왠지 즐겁고 행복한건 사람의 짓궂은 심보다. 말 수도 없는 배서방이 어떻게 이런 깜찍한 이벤트까지 생각했냐며 적이 만족해들 하셨다. 단풍철 백양사 이벤트도 기대하겠단다. 뜻밖의 후한 가점을 따는 기회라면 어찌 백양사뿐이겠는가? 사시사철 웃음꽃이 지지 않는 이벤트를 계획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