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 박찬석 / 본지 편집인
‘골프장 건설경기 부양론’이 최근 정부 주요 인사들에 의해 잇달아 거론되고 있다. “230여개의 골프장 건립 신청 건을 4개월 안에 일괄 심사해 조기 허용하는 등 골프장을 500개 가까이로 늘려 경기를 살리겠다”는 발언을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하더니, 이정우 대통령 정책특보 겸 정책기획위원장은 “골프는 이미 중산층 스포츠가 돼 있는 만큼 골프장을 지금보다 많이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며 거들고 나섰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마치 이런 소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250개의 골프장을 신설할 경우 5만명의 일자리 창출과 27조 가량의 경기진작 효과가 발생한다는 그럴싸한 보고서까지 내놓았다. 골프장을 만들어 경제를 살린다는 논리는 반짝경기를 위해서라면 우리 경제의 미래를 통째로 희생해도 좋다는 ‘경제 자살론’에 가까운 발상이다. 아무리 우리사회가 과거를 쉽게 잊는다지만 망각의 속도가 이처럼 빠를 수는 없다.
IMF 구제금융을 불러왔던 경제위기를 생각해보라. 단기적 성장주의에 안착된 가치와 규범, 그리고 규칙의 위기 아니었던가.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 몇년간의 부동산 가격 급등이 2001년을 전후로 한 정부의 무리한 경기부양책 탓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최근의 가계부채나 신용불량자 문제도 카드 남발을 방치해 미래의 소득을 앞당겨 쓰라고 부추겼던 정부정책에서 비롯됐다.
골프 애호가들에게는 많은 골프장이 생기는 것이 반가운 일일지 모르지만 속사정을 자세히 알고 보면 결코 환영할 일이 못된다. ‘골프장 건설경기 부양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환경단체 뿐만 아니라 골프업계에서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230여개의 골프장이 한꺼번에 건설되어 완공된다면 불과 4, 5년 후에는 공급과잉으로 회원권 가격이 폭락하면서 도산하는 골프장이 속출한다는 것이 골프업계의 전망이다.
일본의 경우에도 1985년 이후 내수 확대정책의 일환으로 골프장 건설붐이 전국을 휩쓸었지만, 거품이 걷힌 후 총 251개의 골프장이 8조 6천억엔의 부채를 안고 도산했다. 골프장 건설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주장에도 많은 거품이 들어가 있다. 18홀 규모의 골프장 한개당 평균 고용인원은 160여명에 불과하며, 이중 극히 소수의 지역주민들만이 일용직 잔디보수요원으로 고용된다. 산림훼손이나 지하수 고갈도 문제다.
일반적으로 골프장은 주로 산악지형에 조성돼 산림훼손의 정도가 클 뿐만 아니라, 토양침식과 토사유출 등 지형을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것이 보통이다. 8홀 규모의 골프장은 하루 평균 약 800톤의 물을 사용하는데, 이는 약 2천여명의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양과 맞먹는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서민들에게 골프는 남의 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다.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에서 골프는 잔디축구장 150개를 지을 수 있는 30만평의 땅을 불과 200여 명이 독점하는 토지소모성 운동일 뿐이다. 골프장 250개를 짓는데 필요한 건설공사비는 13조 6천억원에 이른다. 이렇게 엄청난 돈을 독일처럼 재생에너지 보급이나 기후변화 방지에 투자해 환경보전과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꾀할 수는 없는 것인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취해야할 방법은,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담보할 산업분야에 대한 투자이지 비생산적이고 환경파괴적인 골프장 건설이 아니다. 우리 지역에도 골프장 건설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골프장을 건설하겠다는 의도는 충분히 알겠지만 꼭 골프장이 최선인가는 좀더 심사숙고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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