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지역에 시조를 널리 알린 영원한 사범
영광지역에 시조를 널리 알린 영원한 사범
  • 영광21
  • 승인 2014.11.1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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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환 / 영광군시조협회 사범

“내 고향은 본디 충남 홍성인디, 둘째아들네랑 함께 살면서 농사도 짓고 짐승도 기르고 살았지. 근데 허리가 아파서 일을 못하게 되니까 아들네한테 미안해서 집에 있기가 불편해. 그런 와중에 법성에서 굴비가게를 하는 큰 아들놈이 ‘아버지 같이 살아유’ 하더란 말이지. 그런데 마누라도 안온다고 그러고 주변에 친구, 선후배들이 타지에 가면 외롭다구 가지 말하고 말렸어. 근디 ‘아니여 나는 가야혀’하고 왔제.”
구수하면서도 순박한 충청도 사투리로 들려주는 박광환(85) 어르신의 이야기는 지루할 틈이 없다. 평범한 이야기에도 목소리의 높낮이, 말 사이사이에 가락이 묻어나온다. 현재 영광군시조협회 사범을 맡고 있는 박 어르신 그자체가 시조인 듯하다.

박 어르신은 영광지역에 시조를 알리고 보급한 선구자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광에서 마땅한 취미생활이 있을까 고민하던 박 어르신은 지인의 도움으로 광주광역시 시조문화재인 근촌 이상술씨를 만난다. 홍성에서도 시조를 배우긴 했지만 전라도 시조는 그 형식이 많이 달랐다. 늦은 나이에 버스를 타고 부지런히도 배우러 다녔다. 그리고 결국 시조명인부를 졸업하고 이상술 선생께 이수증도 수여받게 됐다고.
그리고 각 지역에서 열리는 시조경창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심사에 참가했다가 영광에서 왔다는 한 사람을 만나면서 영광에도 시조를 보급하자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박 어르신은 “그 사람이 과거에 영광에도 시조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디 지금은 맥이 끊기고 없다면서 함께 영광에 시조를 보급해보자고 하더라고. 그때 마침 영광읍에 노인복지회관이 생겼어. 그래서 당시 군청 복지과장을 찾아가서 시조교실을 열고 싶다고 말했지. 그랬더니 그 사람이 ‘좋은 이야기지만 무보수로 할 수 있겠냐’고 묻더라고. 당연히 그러겠다고 했지. 그래서 시조교실이 생기고 영광군에도 시조협회가 생겼지”라고 영광군시조협회가 탄생하게 된 과정을 한숨에 쭉 읊어낸다. 그렇게 시작된 시조협회는 한때 번성해 2008년에는 시조경창대회를 열기도 했고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박 어르신은 시조인들의 사범으로 활동하고 있다. 처음 약속대로 무보수로 일하다 지금은 노인복지회관에서 노인일자리사업으로 지원되는 돈을 조금 받고 있다.
하지만 시조를 배우려는 사람들을 가르키고 그 사람들이 경창대회에서 상을 받는 것이 박 어르신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고 보람이다. 대한시조협회 광주지부 고문, 전남시조협회 명인회장 등 광주전남에서는 알아주는 시조인으로 영광군시조협회장으로 취임할 것을 제안받기도 했지만 그저 사범이고 싶은 것이 박 어르신의 마음이다.

“올해도 영광에서 특부 4~5명이 수상을 해서 시조의 전망이 밝아. 그런디 다른 지역과 달리 시조를 즐겨하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조금 안타까워. 내가 이 나이 먹어서 무슨 욕심이 있것어. 그저 내가 이왕 유명한 선생님한테 배운 것을 영광에도 널리 알리고 싶은 것이지.”
이서화 기자 lsh1220@yg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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