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받기 위해 까칠하게 산다는 것이란?
정선형<영광초 6>
착하다는 말을 요즘 사람들은 바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다. 어설픈 착함은 교묘하게 자신을 속이고 힘들게 하는 지름길이다. 그래서 저자는 까칠하게 살자는 것이다. 이를 냉정한 착함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어차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일이라면 자기 생각을 당당히 주장하는 것이 인간관계에 중요하다. 다만 자신의 생각을 죄책감 없이 표현하되 명확하고 간결하게 표현해야 한다. 이것이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가 생각하는 ‘건강한 까칠함’이다.
저자는 까칠함의 전제조건으로 3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내 의견에 대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정보가 필요하다. 둘째 인간과 삶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있어야 한다. 셋째 어떤 경우에도 끝까지 매너를 지켜야 한다.
이러한 건강한 까칠함은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를 방해하는 심리적 문제에는 9가지가 있다. 이들 대부분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자살 본능, 가면우울, 가짜 철학적 경향, 강박장애와 편집증, 공황장애, 환절기 마음병, 따돌림, 열등감과 죄책감, 거부불안 등이 저자가 말하는 방해요인에 해당된다.
건강한 까칠함을 포함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라 할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 그리고 그 생각과 감정이 곧 나의 참모습임을 인정하고 그런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것, 자기 자신을 사랑할 것,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것 등이다. 이것들을 다 실천할 수 있다면 그는 행복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가장 먼저 언급하고 싶은 것이 이것이다.
“이 세상에 내가 어떻게 하든 간에 나의 모든 것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모조차도. 그러니 인정받고 싶다면 인정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관계의 기본법칙이다.”
이에 반해 나는 인정받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인정받기만을 바랐던 것 같다.
“인간관계는 참 힘들어.”
누구를 만나도 듣는 이야기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삶을 살고 나이도 성별도 생각도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도 다른데 잘 지낸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일 수도 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그저 포기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남을 나에게 맞추게 하든가 남에게 맞추든 둘다 피곤한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해결방법이 없으니까 그렇게 살아간다. 그러면서 우리는 생각한다. ‘내가 남에게 맞추지 않아도 남이 나에게 맞춰줄 것이며 설령 맞춰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가까워질 것이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 다르다.
이 책의 저자는 여러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하고 있다.
중재자 역할로서 사람들의 성격을 교정해가고 있다. 남에게 상처를 덜 주고 주위에 더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어 가는 여러 사례들이 나온다.
또 다른 사람에게 과거에 상처받고 혼자 아파하며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나온다. 우리는 가족에게서든 주변 여러 사람들에게 각자의 상처를 받아면서 인생을 살아왔다. 모두가 각자의 고통의 짐을 짊어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저자는 그러한 마음의 치유와 관계개선을 위해 스스로의 자긍심을 키우고 낙관적인 생각을 하고 말로 표현하라고 한다. 일반적인 방법론이라 생각되지만 또한 하나하나가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많은 걸 배웠다. 최근 내가 어려워 하던 인간관계가 좀 더 쉬워지기도 했다.
인정받기 위해서 냉정한 착함을 유지하고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물론 나도 이 책을 읽고 저자가 중요하게 느끼는 것을 생각해 보면서 느꼈다. 어렵지만 인간관계는 인정받고 싶으면 인정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인정받기만 바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나도 인정받을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
요즘 나는 사람들하고의 관계가 무척 두렵고 꺼려졌다. 사춘기라서 그런지 더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한동안 심리학쪽 책을 즐겨 읽었다. 조금이라도 더 관계가 원활하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냉정함과 착함을 유지하고 인정받을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 이 책에서 배운 걸 통해서 지금 이 사춘기를 인간관계가 어려운 지금 이 시기를 견뎌내고 잘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는 마음의 숯돌
신연주
달
보름달 보면 맘 금세 둥그러지고
그믐달에 상담하면 움푹 비워진다.
달은
마음의 숯돌
모난 맘
환하고 서럽게 다스려주는
달
그림자 내가 만난
서정성이 가장 짙은 거울
요즘 나는 남편을 가만 두질 못해 안달이다. 툭하면 뭐든 남편 탓이다. 그래서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남편은 나보다 능력이 뛰어나야 하고 가정을 잘 꾸려가야 하고 특히 경제적인 능력은 필수적이어야 한다고 여긴다. 이처럼 끊임없이 해야 하고, 해야 하고, 해야만 하는 남편이 어느 하루인들 성에 찰 것인가.
대학생인 아들, 대학을 졸업한 아들. 아들이 둘이 있긴 하지만 밖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아이들보다는 아무래도 남편과 지내는 시간이 더 많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도 우리 부부는 별 말이 없이 그저 밥그릇만 비운다.
더위도 식힐 겸 동네 산책길에 나선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이들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걷는 모습이 정답다. 나란히 옆에 있긴 해도 도무지 말수가 없는 남편이 답답하기만 하다. 의무만 잔뜩 지우며 날마다 성화를 해대는 마누라가 얼마나 예쁠까마는 세상사는 자질구레한 말거리라도 터지기를 기대하는 내가 잘못된 것인가. 밤하늘에는 반달이 주변의 어둠을 밀어내고 이런 내가 우스운 듯 내려다 보고 있다.
“내가 시 한 수를 녹음해 왔으니 이어폰 한쪽씩 나눠 끼우고 같이 외웁시다.”
“당신이 다 외우면 내가 검사해 줄 테니 혼자 해.”
내가 기대를 말아야지. 할 수 없이 혼자 주절주절 시를 읊조리고 또 걸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다만 시 구절을 외우려고 했을 뿐인데 머릿속에 점점 시 구절이 스며들더니 나중에는 가슴으로 번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달은 마음의 숯돌, 모난 맘 환하고 서럽게 다스려주는 달. 정말 그랬다.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다 외웠어.”
“해 봐.”
술술 외우다가 막히는 부분에서는 남편이 땜질을 해 주었다. 그냥 걷기만 한 게 아니었네? 우리는 산책길을 빙빙 돌면서 시 암송이 완벽해질 때까지 서로 땜질을 해 주었다.
젊음의 향연 속 곧게 피어난 웃음꽃
서유진<홍농중 3>
항상 부르고 불러도 어색한 두 글자 엄마의 품에서 자란지 눈 뜰 새 없이 벌써 고등학생이 되는데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 딸 유진이에요.
엄마!
작년에도 이맘때 엄마한테 편지를 썼었는데 1년이란 짧은 시간 안에 못나고도 자유분방한 저의 모습 지켜봐주시느라 고생 많으셨네요. 철이 들기엔 아직 너무나도 작은 저이지만 엄마의 손길 거치면서 조금씩 일어나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질 않아요. 추석을 지나오면서 모쪼록 모인 가족들 사이에 오랜만에 크게 웃는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사진첩에 있던 젊었을 때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누군가 지나가기라도 한 듯 눈가의 주름이 있어도, 그냥 지나가면 될 것을 엄마의 머리 위에 앉아 뿌리고 간 세월의 흔적이 많아도, 하루 종일을 움직이며 지겨운 밥그릇을 손에서 내려놓을 틈이 없어 야윈 모습도, 저는 알아보지도 못하고 매일 매일 작아지는 엄마의 어깨에 훌쩍 커버린 저의 어깨를 얹고 있을 뿐이네요.
한 달에 한 번씩 병원 신세를 지는 와중에 제가 진찰받고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도 힘드신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지금의 저의 모습에 피부가 왜 이 모양이냐, 왜 치아에 이런 문제가 있는 것이냐, 왜 나만 그러냐며 짜증내면서 울었던 기억이 나요. 그 때 엄마가 저한테 뱉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몇 년이 흐른 지금도 저 밑 끝까지 후회가 되네요.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입 밖으로 꺼내기가 힘들어 미루다 글로 적어요. 엄마도 학창 시절에 그랬다는 것, 보이는 모습이 싫어 엄마도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전혀 부끄럽지 않았어요.
엄마는 저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엄마가 저를 봤을 때 제가 엄마의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딸이 되고 싶어요. 엄마의 어릴 적 힘들었을 모습이 젊었을 때 후회했던 모습이 제가 보자기가 돼 감싸질 수만 있다면 어디 가서도 당당하게 엄마의 자부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가끔 엄마가 저한테 옳은 말을 해주실 때면 ‘나도 커서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아는 데는 짧은 시간이 걸리지만 내면을 보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린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땐 당연한 것이지 하고 넘겼지만 항상 거울을 보면서 그 말씀을 떠올리며 저를 다잡곤 해요. 그런데 이게 쉽게 되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더 엄마를 부르게 되고 찾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랑 언니랑은 성격이 많이 다른 지라 서로 같이 가면 안 될 길을 지나는 것 마냥 싸우는데 엄마는 화를 내는 것 보다는 타이르고 대화하는 걸 선택하셨잖아요. 엄마가 언니한테 보낸 장문편지를 우연히 보게 됐는데 왠지 모르겠지만 그 자리에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밤늦게까지 식당에서 온갖 궂은 일을 하시고 돌아와 우리 자는 모습 한번 보고 또 편안한 잠자리를 막는 집안일을 마치시고 잠자리에 들기 전 엄마가 손에 무언가를 바르며 힘겨워 하는 모습을 봤을 때 가서 발라드리고 싶었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부드러운 엄마의 손길에서 자라오다 어느 날 붓고 갈라진 엄마의 손을 보면서 무언가를 잡는 것도 쓰라려 하시는 그런 엄마가 연필을 잡고 장문편지를 썼다는 것에 그 자리에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어요.
하나의 지게를 지는 것도 버거워 보이는 엄마의 어깨에 어느샌가 두 개의 지게가 짊어져 있고 한명의 여성으로 젊음을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엄마의 지게를 벗어나고 싶은 적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탓하지 않으시고 우리 자매를 위해 묵묵히 앞만 보고 걸어오신 엄마를 볼 때면 나의 지금 상황에서 ‘아, 이러면 안 돼’ 하지만 서도 돌아서면 ‘이쯤이야 괜찮아’ 하고 마는 제 모양이 빛 잃고 깜박이는 전등인 듯해요.
아빠와 떨어져 지내고 있는 엄마의 옆에서 아빠같이 든든한 딸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아요. 신의 공평함이 우리에게는 벗어나셨나 보구나 하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가끔 공평함을 벗어나셔서 우리가 직접 공평함을 만들어보라고 기회를 주신거구나 라고 생각할 때도 있어요. 그래서 나에게 빛과 같은 엄마가 있고 테두리 같은 언니가 있다고 느껴요.
화분을 가꾸는 것이 엄마의 취미라는 것을 알아도 한번도 같이 화분에 대해 꽃에 대해 얘기를 나눠 본적이 없네요. 어쩌면 화분은 맨날 그 자리에 있으면서 스스로 모습을 바꿔가지만 저는 맨날 그 자리에 있는 것조차도 못하면서 엄마를 위로하고 같이 있어주는 화분이 괜히 싫어 얘기를 꺼내지 않았나 싶어요. 이런 생각을 할 만큼 한참 어린 저이지만 여름 방학 때 엄마가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엄마를 간호하고 음식을 만들며 괜찮은 척 했지만 오뚝이처럼 항상 서있던 엄마가 누워 있으니 머리로는 너무 무서웠어요. 엄마가 나와 멀어질까봐서가 아니라 엄마와 내가 변하는 모습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나 봐요.
나는 아직 엄마한테 해드린 게 아무것도 없는데 점점 엄마도 나이가 들어가는 모습이 실감이 나더라고요.
제가 저번에 엄마한테 꼭 커서 엄마랑 같이 해외여행가는 것이 내 꿈이라고 했던 것 기억나실지 모르겠지만 항상 이 꿈을 생각하면서 아무것도 없이 막연하게 어디로 갈까 하며 상상하며 웃기도 해요. 바쁜 엄마와 같이 한 추억이 많이 없어 상상으로 라도 해보는데 꼭 언젠가는 이 상상이 현실이 되게끔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려고 노력하네요. 국어시간에 부모님의 고민이 무엇인가를 적는 것이 있었는데 그 칸에 나 같은 딸을 낳은 것이라고 적었다가 지운 적이 있어요. 제가 엄마에게 좋은 모습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엄마와 가장 가까워서 무심하게 된 적도 많았어요. 한 학년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부모님의 ‘고민란’에 적었다 지웠던 저의 생각이 맞은 것도 같아 나 같은 딸이 있어 정말 좋은 것으로 바뀌도록 제 스스로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해요.
평생 저의 뒤를 지켜주시느라 고생하시는 엄마, 언젠가는 엄마의 젊음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날이 와 웃음꽃이 피어날 때 그땐 제가 엄마의 뒤를 지켜주는 딸이 될게요. 또 아직 배울 것도 많고 알아야 될 것도 많아 걱정이 앞서기도 하지만 엄마가 있어 두려워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수 있어요.
엄마 자랑스러운 딸이 돼 엄마의 ‘자랑란’이 모자라게 멋진 딸이 될게요. 그리고 앞으로 엄마 손 잡고 많은 이야기 나누면서 엄마의 작은 웃음꽃을 피워드릴게요. 엄마 사랑합니다!
발병난다
이 슬<해룡고 3>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우리 민요 ‘아리랑’의 한 구절이다.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민요를 말하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이 ‘아리랑’일 것이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아리랑이 있었지만 1926년 발표된 나운규 감독의 무성영화 <아리랑>을 통해 하나로 통합돼 널리 사랑받아 온 것이 ‘발병난다’는 구절을 가진 아리랑이다.
이 민요가 우리 민족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이 노래가 우리 민족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조금 섬뜩한 저주 같기까지 한 ‘발병난다’라는 가사에는 민족의 한이 담겨있다.
조정래의 장편소설 <아리랑>은 구한말부터 해방기까지 일제 치하의 모든 역사를 보여준다. 이 기나긴 소설을 이끄는 핵심적인 소재는 소설의 이름이 알려주듯 민요 ‘아리랑’이다.
아리랑은 소설 속에 우리 민족이 한을 풀며 노래하는 모습으로 틈틈이 나타나 우리 민족의 애환을 표현하고 있다. 그 흥겹고도 구슬픈 가락 속에는 우리 민족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담겨있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치밀하고도 잔인하게 우리 민족을 탄압했다. 하지만 그 탄압보다 우리 민족을 더 힘들게 했던 것은 자신의 민족을 사랑하지 않은 친일파들이었다. 그야말로 민요 가사 속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들이었던 것이다. 민족을 버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떠나가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대목이 바로 ‘발병난다’라는 그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광복 후 약 70여년이 지났지만 우리나라는 친일파를 숙청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아직까지 힘을 쥐고 있는 우스운 꼴을 하고 있다. ‘아리랑’을 부르며 그들을 원망하시던 조상님들께서 통곡하실 일이다. 물론 그들은 더 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어떤 면에서는 ‘발병 났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 그것은 엄청난 벌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친일행위를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자신의 민족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도 사랑할 수 없다. 우리가 무심코 부르던 ‘발병’의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마음의 병, 영원히 고칠 수 없는 마음의 병을 말이다.
양심을 ‘마음속의 세모’로 표현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뾰족했던 세모가 마음속에서 뒹굴어 처음에는 아프지만 그것이 닳게 되면 무뎌져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다. 무엇이든 오랜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기 마련이다. 그 사람들도 마음속 세모가 닳고 닳아 마음의 짐을 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발병’에서 벗어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절름발이이면서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지금도 절뚝거리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며 자신들이 누구보다 건강하다고 믿고 있다. 다리를 절며 세상을 돌아다니다 언젠가는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곤 깨달을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큰 벌인지, 자신들이 어떠한 일을 저지른 것인지 말이다.
아직 깨닫지 못했다면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에라도 죽은 이후에라도 언젠가는 깨달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모두가 그것을 깨달을 때 마음속에서 닳아 동그라미가 된 세모가 다시 그 각을 되찾을 때 그 친일파라는 이름의 절름발이들이 사라질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