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환의 삶 자체를 파악하기 위한 차원에서가 아니라 그의 예술세계를 형성시킨 토대와 자양분으로서 그를 음미해보면 다음과 같은 몇가지 특성이 드러난다.
전경환은 솔직했던 사람이었다
전경환은 매우 솔직했던 사람이었다. 얄팍한 술수를 쓰거나 거짓을 일삼는 분이 아니었다. 본인이 원하는 욕구를 상대방이 다 파악하도록 하되 상대방이 뻔히 알면서도 본인이 원하는 바를 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사용했다.
수가 뻔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내 자신을 보면서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속이여”라고 자문해 본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결코 밉지 않았던 영감탱이
- 박흥주 <바람난 삼신할매>
자신의 수를 상대방이 파악하도록 함으로써 치기어린 행동이나 꼭 원하는 바가 이뤄지기를 갈망하고 있다는 점을 주지시킴과 동시에 상대방이 상대적인 우월감을 갖도록 만드는 효과를 얻는 것 같았다.
이런 솔직함을 스스럼없이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자신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보형 선생과의 인터뷰에서 이보형 선생에게 “내가 아는 것만 물어주시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모르는 것이나 자신이 해 온 굿과 다른 것을 대입시켜 무엇인가를 유도하려하지 말아달라는 뜻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재주와 굿에 대한 실력이 상처를 받는 순간에 그 솔직함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을 목격할 수도 있었다. 공연장에서 장단을 놓친 경우가 있었다.
아주 단순한 가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으로 장단을 놓치게 됐다. 뒤풀이 성격의 놀이판이 공연이 돼 버린 상황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장단을 놓친 순간 전경환은 얼이 빠져버렸다고 느껴질 정도로 망연자실해져 버렸다. 계속 제 박자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것이었다. 대부분 이럴 경우 눈치껏 얼버무리며 넘어갈 수 있으련만 이분의 반응은 정 반대였다. 그냥 얼어버렸다.
실력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이 없고서는 설명이 안되는 상황이었다. 최고의 실력으로서는 도저히 용납이 안되는 상황에서 스스로 이를 용납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자신의 치욕스러운 실수마저도 그냥 그대로 드러내는 고수, 고수들 간의 한수게임을 보는 듯 했다.
돈을 좋아하는 생활인이었다
전경환은 돈을 좋아했다. 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겠지만 전경환은 돈을 좋아함을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현금을 받아들면 어린아이처럼 좋아했으며 좋다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했다. 이는 생존을 위한 치열한 노력에서 나오는 양상으로 보여졌다.
서울역에서의 즉석 놀이판은 돈벌이에 대한 구체적인 작업성격도 전제된 것으로 보인다. 놀이판을 벌임으로써 스스로의 무료함을 달래기도 하고 즉석에서 꽂히게 될 돈에 대한 기대감도 내재해 있을 수 있다.
이는 포장걸림이나 약장사를 오래한 경험과 자신감에서 나온 스스럼없는 행동에 해당한다.
놀이판을 벌이면 분명 어느 정도의 돈이 쏟아질 것이라는 경험치와 기대치가 내재된 행위일 수 있다. 무료함도 달래고 좌중도 즐겁게 해주고, 돈도 벌수 있는 행위. 이를 과감하게 행동에 옮기는 순발력과 기획력이 돋보이는 순간이기도 했다. 가방 바닥에 해당할 직업에서 다져진 감각과 생존력으로 보였다.
법성포에서 벌어진 놀이판에서 배고픔을 참아가면서 최대한 놀이판에서의 역할에 충실하는 모습을 통해 그의 강한 생존력과 건강함이 배어나왔다. 그렇게 번 돈으로 가정을 지키고 추스르는데 전념하는 모습 또한 보여줬다. 흥청망청 쓰거나 유흥으로 탕진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젊은 시절 충분히 그렇게 하면서 깨우친 수업료 덕분이라는 점을 유추하게 하는 솔직담백한 자신의 행적담을 통해 쉽게 파악됐다.
젊은 시절 법성포에 만선을 한 조기잡이 중선배들이 수시로 드나들 때 밤새워 들려준 그의 가야금 병창소리에 뱃사람들의 주머니가 활짝 열렸었고 가마니에 퍼담을 만한 그의 돈이 새벽이면 밤을 함께 한 기생의 치마폭으로 다 흘러들어가고 난 다음이었다는 무용담(?).
임방울 단체나 김연수 단체에서 활약하던 시절 공연이 끝나고 나면 바로 납치되다시피 기생집으로 가 발을 씻겨주는 등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면 날이 밝아 “100원짜리 하나 없이 떨어진 양말짝만 들고 돌아왔다”는 이야기 등 그의 돈에 대한 환희는 그래서 탐욕스럽게 느껴지지 않았으며 소박한 소시민의 강한 생활력으로 느껴질 수 있었다.
그는 여자를 좋아했다
전경환 명인은 가야금 병창, 아쟁산조, 영광우도농악 상쇠, 부포상모놀이의 대가, 춤선생 경력, 어정판의 피리, 장구, 소리북 끝이 없다. 이 모두가 그의 재주이다. 거기다 총도 잘 쏜다. 진맥 침놓기도 빼놓을 수 없는 재주다. 게다가 “거쳐 간 여자만 몇 추럭(부인의 표현)”이다.
영광우도농악 공식홈페이지에 전경환을 소개하는 글중 일부다. 만인에게 공개되는 공식 홈페이지에 여자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거쳐 간 여자면 몇 추럭(트럭)이다”는 부인의 표현 외에도 전경환 스스로도 2~3년 같이 사귄 여자만 199여명이라고 스스럼없이 밝힌 바 있다. 이런 무용담은 웬만한 굿쟁이들은 다 있다. 그러나 제자들이 운영하는 공식적인 홈페이지에 공공연하게 드러내놓고 밝힐 수 있는 사례는 흔치 않다.
앞서 소개했듯 평소 당사자가 솔직하게 드러내놓고 스스럼없이 행동했기에 제자들도 이를 굳이 가리고 숨겨야한다는 강박감을 원천적으로 해소시켜버렸음이 분명하다. 영광일원에서는 이런 말이 회자됐었다. 필자도 처음 전경환 선생과 인연이 되고 찾아다니기 시작한 초기에 들은 말이었다.
잘 꼬신다 전경환, 다짜고짜 김오채, 음흉하다 김영철이, 넘어다본다 전사섭
모두 자신의 재주와 예술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분들이다. 위의 말은 모두 여자와 연관을 맺는 표현들이다. 그들의 캐릭터를 단적으로 그려주는 한마디들. 촌철살인에 비견될 대중들의 언어감각이자 비평의식이 배어 있다.
전경환 본인이 필자에게 직접 이야기할 때는 자신을 “잘 지순다 전경환”으로 표현했다. ‘잘 지순다’는 표현은 잘 꼬신다와 상통하는 말이다.
▶ 박흥주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