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환의 예술에는 그의 진한 삶이 배어있다
전경환의 예술에는 그의 진한 삶이 배어있다
  • 영광21
  • 승인 2014.12.3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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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청의 역사성에 입각해 바라본 전경환의 예술세계 ⑤

전경환은 재주가 많았던 사람이다. 그는 다양한 재주의 소유자였다. 그 재주는 단지 음율에서만 발휘된 것이 아니었다. 총도 잘 쐈다. 사냥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총질은 호사취미로서라기보다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한 방편이었다. 그는 다양한 직업을 가졌었다.

흥행단체생활을 하던 시절도 있었고 놀음방을 전전하며 기예를 팔던 시절도 있었고 어정판에서 돈을 벌던 시절도 있었고 약장사를 13년간 대장노릇하면서 전국을 이끌고 다니던 시절도 있었다. 시절이 ‘인간문화재’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되자 결국 인간문화재가 돼 버리기도 했다. 전남도립국악원에 취직해 선생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흘러오는 여정 속에서 생계가 막연해질 때도 있었다. 그때 총을 들기도 하고 침을 꼽기도 했다. 밥을 벌기 위해서였다. 소위 야매의사, 즉 불법의료행위도 불사했던 것이다.
그의 재주는 모두 돈 버는 목적에 철저히 복무한 셈이다. 이 모든 재주는 그의 경쟁력이기도 했다. 다음은 약장사를 할 때의 그의 모습이다.

약장사도 내가 연극하고 가야금 해버리고 당까 해버리고. 긍께 사람 섯만 있으면 별일 없어. 그럴꺼 아닝가? 당가허는 놈 델꼬 댕겨 연극 허는 놈 델꼬 뎅겨… 아쟁 했다가 병창했다가 연극 심봉사했다가 소리헐 때는 또 고넘 소리허고 다 망해도 난 안 망한다 그랬어.

이처럼 사회의 밑바닥까지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직업을 가지게 됨으로써 얻게 되는 것은 세상물정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많은 사람들을 파악할 수 있는 감각획득, 또한 상대에 적합한 요리방법을 체득하는 기회제공. 이런 경험과 감각은 고스란히 그의 장단 속에 기운이 돼 배어들게 됐을 것이며 대중을 요리하는 마술로 발현될 수 있었다.

좌중을 잘 움직였던 사람이다
전경환이 좌중을 움직이는 방법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그 마음은 이성에 기반을 둔 마음이 아니라 감성과 감각에 기반을 둔 마음이다. 그 영역을 건드리고 요리하는데 달인의 경지였던 셈이다. 이를 건드리는 통로가 장단을 기저로 한 가무악이었음을 이미 살펴봤다. 전경환의 능력은 개인의 마음을 흔드는 차원에서 그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특별함이 있다.
조직을 잘 움직이는데 아주 탁월한 감각과 능력을 발휘했다. 나아가 조직을 만들고 관리하는데도 능수능란했다.

그는 전라북도의 내노라하는 굿쟁이, 명인들을 끌어 모았다. 계를 묶어서였다. 모두 인간문화재급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경환이라는 사람이 대장질 하는 것에 이의가 없어 보였다. 그중에서도 ‘8인당’이라는 핵심조직을 만들어 관리했다.
전경환은 연설하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 연설은 자화자찬에다 지루하게 길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처럼 정도가 넘어갈 때는 분명 문제가 생겼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생존해 있는 동안에는 그 조직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조직화시키고 이를 잘 관리할 수 있는 능력발휘는 13년간 약장사를 이끌던 대장질이 큰 자양분이었을 것이란 추정이 어렵지 않다.

나는 개인적으로 견경환의 사람다루는 기술에 더 감탄한 적이 많다. 이는 그의 창작작업의 성격과 내용에 영향을 크게 미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인 더늠을 새롭게 창출시켜내는 것보다는 큰 틀에서의 전체 판을 새롭게 구성하고 창출시켜낸 결과물들이 대부분이다. 즉 개인놀음보다는 전체 판제구성이나 새로운 놀음편성 그리고 기획력에서 그의 장기가 가장 잘 발현됐다. 개인놀음에 집중하고 이를 최대한 발현시키는 역할에 충실했던 김오채 설장구와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종합해보면 많은 부분에 있어 전경환의 커리어와 행동은 전경환을 천박하고 경박하게 만들 수도 있는 요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볍다고는 느끼게 할망정 천박하다는 평가를 만들어내지는 않았다. 그 천박함을 제어해주는 것은 그의 뛰어난 실력에서 나왔다는 판단이다.

그의 삶이 투영된 예술세계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고 그 속에서 자유자애하며 즐기고 있는 경지는 당당함으로 나타나고 솔직함으로 표출되고 순간순간 자신을 낮추면서 상대를 편안하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상대가 움직이게 만드는 기세와 여유로 발현됐다는 분석인 것이다.
전경환의 예술세계는 신청의 그것들과 많은 영역에서 일치하고 있다. 우선 태생이 그러하며 태생으로 인한 사회적 분노가 개인의 분노로 침잠해서 평생 삶을 구현하고 생존해 나가는데 있어 크게 영향력을 미쳤음이 드러났다. 신분에 의한 아픔과 예술로 승화시키는 맥락은 과거의 신청과 그 소속의 무부들에게도 동일했을 것으로 보인다. 신분의 굴레가 전경환보다 더한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전경환의 예술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외형적인 조직이나 형식적이고 구체적인 실체로서의 연결고리는 주요하지 않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신청과 전경환의 예술세계와의 상관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그런 형식적이고 외형적인 실체보다도 본질적으로 상통하는 무형의 무엇을 공유하는 것이 우선할 것이다.
즉 현재의 내가 주인공이 돼서 철저히 상황과 조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놀릴 수 있느냐의 여부다. 그 목적을 숨기거나 포장하지 않고 자신만만하게 드러낼 수 있는 솔직함을 겸비했는가도 주요한 요건이다. 과거의 전경환, 전경환이 성취한 과거, 전경환의 감각과 꿈을 그대로 재탕하는 것은 전경환을 그저 이용하는 결과가 될 것이며 전경환의 굿과 예술세계를 껍데기로 만드는 결과로 직행할 위험성이 내재될 수 있다.
▶ 박흥주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