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전위험 감시체제의 근본문제와 개편방향 ③
핵발전소가 위치한 지자체의 역할
핵발전소가 있는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입지과정에서 지역주민의 동의가 필요함과 마찬가지로 핵발전 안전에 대한 감시권한을 보유함이 마땅하다. 사고시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핵발전의 정기점검 후 재가동시에 재가동 승인권한이 지자체장에게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다.
가동과정에서도 안전이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지역주민의 주권적 개입이 가능하다는 원칙이 견지돼야 한다.
홍성방은 <핵에너지의 헌법적 문제 > 논문에서 “핵발전소와 같은 대규모 시설을 결정하는 과정에 국민이 참여할 수 있게 되면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훨씬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본적 결정의 정치적 구조가 명확해지고 기술의 본래 영역과 그 한계가 더욱 가시적인 것으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에너지생산이 무제한적으로 허용될 것인지 아니면 엄격한 수요에 따라 행해져야 할 것인지 여부, 핵발전소의 위치가 비용에 따라 정해져야 하는지 아니면 주민의 안전성의 관점에서 정해져야 하는지 여부, 재생 가능한 재료를 사용해야 하는지 아니면 일회성재료를 써야 하는지 여부 등이 국민의 관점에서 정치적 토론에서 합리적으로 비교형량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참여가 실감나게 이뤄지는 현장이 지역레벨이므로 그 멍석을 깔아주는 일이 핵발전소가 입지한 지자체의 중요한 역할이 된다.
수백㎞ 떨어진 서울에서 논의하는 것과 눈앞에 펼쳐진 핵발전의 생생한 현장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부산에서 논의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실상과 문제점의 공유와 그에 대응하는 논의과정에 참여하는 등의 국민주권의 구체적 실현은 부산시장이 아니면 안되는 부분이 있다. 일본의 지자체는 더 나아가 재가동승인의 지위까지 확보하고 있다. 부산시장이 향후 관철하지 않으면 안되는 부분이다. 바로 여기에 주목하고자 한다.
자치단체장이 현장책임자 돼야 한다
핵발전소 위험에 따른 위기관리시스템 구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예방적 통제가 법적으로 마련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사전에 준비된 대비활동과 신속한 대응 및 복구가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그 피해가 초재앙적 수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난의 예방적 조치로서 핵발전소와 관련된 비리 또는 부패행위에 대해서는 다른 일반규정보다 훨씬 엄격한 법적 처벌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독일의 원자력법은 평화로운 핵에너지 이용을 국가가 관리하는 대신에 사경제 질서에 맡기되 연방 및 주의 허가 및 감독법적 권한에 의해 통제하는 것을 기본구조로 하고 있다.
또 원자력재난 발생시에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위기관리의 모든 권한을 갖고 필요한 자원을 동원하고 조치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프랑스 알사스 지방의 뮐루즈(Mulhouse)시는 원자력 재난 발생시에 시 서비스의 운영방식 일체를 조정하고 민간안전을 위한 시의 예비자원의 사용을 명할 수 있는 한편 기업이나 시민이 제공하는 수단의 일체를 접수하고 배정·배치하는 권한도 갖는다.
특기할만한 사항은 이러한 긴급상황에서 뮐루즈시는 여러가지 작전의 지휘를 군대에 준하는 형식으로 할 수 있게 해 혼란 속에서 명령의 지휘와 집행이 일사불란하게 이뤄지도록 계획을 짜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대책법에 따르면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중심이 돼 현장방사능방재지휘센터를 설치하고 지방자치단체 및 지정기관에 대해 임무를 부여한다. 대피, 소개, 음식물섭취 제한, 긴급 주민보호조치 등의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현장 실정에 적합하지 않은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이 있다.
국제협력체계 강화의 필요성
핵발전소는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그 피해가 인접국 및 국제사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위기관리시스템에 인접국이나 국제사회가 함께 참여하고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비상사태 발생시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국제협력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요구된다.
핵발전소 건설 허용에 대해서는 아직 국제적인 규제는 없지만 이에 대한 규제의 기준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사고가 나면 핵무기보다 훨씬 위험하다. 이 위험한 존재에 대한 국제적 원칙의 미비는 이 시대의 모든 이가 자책해야 마땅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적어도 한국, 중국, 일본 3국은 비상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비상물품의 목록을 교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 같은 네트워크 구축이 가능한 경우에는 기술인력 교류와 국제협력 협의체도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제원자력기구 IAEA의 한계
현존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1953년의 유엔총회에서 당시 아이젠하워 미대통령이 ‘평화를 위한 원자력’을 제창한 것을 계기로 57년에 발족됐다. 핵의 파수꾼인 동시에 핵의 평화이용 촉진을 기표로 삼고 있다. 핵발전 마피아들의 서식지라고 할만하다.
그런데 최근에는 후쿠시마 핵발전사고가 국제원자력기구의 역할을 원자력 개발을 촉진하는 것보다 그 안전성을 감시하는 쪽으로 노력을 기울이는 듯 한 모양을 보인다. 하지만 핵발전의 안전한 확산이라는 본래의 목적에는 변함이 없다.
정부차원에는 안전점검에 있어서 IAEA와 같은 국제기구에 협력을 요청하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으나 이 또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1957년 출범한 IAEA가 있음에도 스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와 같은 대형참사가 그 이후에 터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고리1호기의 안전상태에 대한 IAEA의 결론이 어떠한들 그것만으로는 신뢰를 주지 못한다. IAEA를 넘어선 어떠한 인류차원의 지혜를 동원할 방안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세계시민으로서의 국민주권적 요구가 제기되는 것이 당연하다 할 것이다.
핵발전소와 국민주권
헌법 제10조는 국가의 기본적 인권보장의무를 확인하고 동시에 국민의 주관적 권리를 확인하고 있다. 이 규정은 기본규범으로서 국가권력을 구속한다. 따라서 입법, 행정, 사법 등 모든 국가작용의 목적과 가치판단의 기준을 제공하며 나아가서 인간의 가치와 존엄에 기반을 둔 헌법의 기본권조항은 국가질서의 요소로서의 의의를 가진다. 기본권 중에서도 생명의 보존과 안전의 추구는 기본권중의 기본권이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통치기구를 조직하는데 있어서 통치권의 행사가 전제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그 역사가 오래됐다.
권력의 집중이 권력의 전제와 횡포를 낳고 권력의 횡포 앞에서 인간의 자유와 권리는 그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은 인류역사의 교훈이다. 그 교훈이 가르치는 것이 삼권분립이론이다. 국민주권에 의한 의사결정의 기회가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
무엇보다 핵발전소와 같이 국민의 안전 및 생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시설의 설치는 국민의 의사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 헌법정신이다. 국민주권의 영역이다. 우리가 가진 천부적 국민주권이 의사결정에 반영되지 않는 것은 우리의 과오다. 시대적으로 부과된 책임을 지지 않는 집단적 직무유기이자 치명적 의지상실이다.
원래 핵발전의 비중인 26%는 지금 중앙집중식 체제로 공급되는 에너지다. 원료의 채굴 가공 수송 에너지생산 공급 등의 모든 과정에서 자본이 관여한다. 자본이 돈을 버는 구조다. 한전과 같은 기업을 지탱하는 것은 금융이다. 반면 에너지전환을 하면 동네주민이 돈을 번다.
태양광과 풍력은 공짜고 지열과 바이오매스는 순환적이고 지속적으로 동네에서 원료가 공급된다. 에너지를 절약하는 건축 리모델링시장은 지역의 군소건설업체가 참여한다. 그러한 민부가 커지는 경제비전이 독일을 서슴없이 탈핵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에너지전환이 곧 복지이자, 양극화를 시정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더욱 중요한 것은 본고에서 고찰한 바와 같은 핵발전소의 절대적 안전의 확보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상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제언을 하고자 한다.
핵발전소 안전성 확보를 위한 제언
고리1호기 월성1호기는 즉시 해체하라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와 같이 수명이 다한 데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핵발전소는 즉시 가동을 중단하고 해체해야 한다. 이 해체는 지금 모든 국민의 열망이기도 하다. 약간의 경제적 이득과 바꿀 수 없는 민족의 명운이 걸린 문제다.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자본권력의 이득을 위해 안전을 맹신하는 행정부 수반의 결정에 의해 수명을 초과해 가동을 연장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고리1호기 월성1호기와 같은 핵발전소에서는 사전점검과정에서 위험유발 상황이라도 발견될 경우 행정부수반인 대통령 사임까지의 무한연대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기본권을 수호하는 국민주권의 헌법정신이다.
핵발전소의 신규건설계획은 국민투표로 결정
민족과 국토의 명운과 관련되는 시설이다. 국민으로 하여금 결정하게 하라. 지금은 모르기 때문에 침묵하고 있다.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선택을 해야 하는 국면에 처해지게 되면 그 과정에서 탈핵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를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어떻게 결론이 나든 어떠한 선택이 되던 그 결과는 효과가 크다.
① 건설반대를 결정할 경우 반대의 지속성이 유지될 것이고 ② 건설찬성일 경우 당대의 국민이 역사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국민 전체에 긴장과 각성을 불러일으키면서 차후의 의사결정시에는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국회에 핵발전감시기구를 설치하라
핵발전소를 궁극적으로 폐쇄할 때까지 이미 가동중인 핵발전소의 감시를 위한 근본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현시점에서 핵발전소 안전문제에 대한 대안을 생각해보면 원자력안전위원회와는 별도로 국회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회의 입법기능을 보좌하기 위해 국회내 공식기구로 입법조사처가 있듯이 그리고 국회의 예산관련 기능을 보좌하기 위해 국회예산정책처가 있듯이 국회의 국정조사기능을 보좌하기 위해 국정조사처를 신설하고 그 내부에 핵발전소 감시국을 설치하는 것이다. 이것이 상식적이다.
광역단체장에게 현장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라
원전재난시의 책임감을 갖고 신속한 의사결정과 조직적 통제를 전개하려면 원안위의 위원장이 모든 것을 책임질 수는 없다. 행정라인 통솔이 일상적이지 않은 전문가일 뿐인 위원장은 현장대응이 능숙하기 어렵다.
행정라인 통솔은 훈련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세월호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재난시에 이를 제대로 대응하려면 프랑스 뮐루즈(Mulhouse)시처럼 지자체장이 직접 공무원을 인솔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적어도 핵발전소가 있는 부산시장과 경북도지사, 전남도지사가 현장책임자가 되도록 하라.
그렇게 되면 점검후 재가동 승인이 쉽게 날 수가 없다.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부여하는 것이다. 그것이 국민주권의 뜻이다.
‘안전’과 ‘경제’ 모두를 지향하는 원전해체산업을 육성하라
수명이 다하고 노후화된 원전의 해체는 안전을 보장할 뿐 아니라 본고에서 검토한 원전해체산업의 전망을 볼 때 해체기술을 쌓는 호기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핵발전소 해체부문의 시장규모가 크므로 이들의 고용전망은 어둡지 않다. 그렇다면 이 방면의 비전제시와 실질적 전환에의 노력이 적극적으로 모색되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효하다고 할만하다. 전세계 450개의 핵발전소가 앞으로 50년내에 순차적으로 해체의 길을 걸어야 한다. 그 시장은 어마어마하다. 외면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해체’라는 개념은 ‘안전’과 동반적이다. 수명이 다해 안전하지 않으니 해체한다는 흐름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웬만큼 수명이 다하면 해체하는 것이 안전비용 부담면에서 더 낫다는 결론이 나온다.
세계시장은 독일 같은 선진국과 컨소시엄을 맺어서 진출할 수 있을 터이나 그러려면 우리의 기술수준을 높이는 것이 관건이고 그 기술은 경험의 축적이 필수적이다. 고리1호기, 월성1호기를 활용하라!
새로운 국제협력체계를 구축하라
IAEA만으로는 안된다. 우리 힘이 부족하다면 새로운 국제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당장의 방안으로서 대한민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가령 독일과 같은 나라와 협력 MOU를 맺어 원전안전·감시에 대한 일을 통째로 공유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방사능은 국경이 없다. 한국에서 원전사고가 나면 독일에도 영향을 미친다. 독일은 핵발전소를 17기나 가동했었고(전기생산의 비중은 22%), 지금 가동중단중인 9개의 원전에 대한 해체작업에 착수했고 가동중인 원전들을 세워놓고 안전점검을 철저히 해나가는 나라이다. 우리보다 앞선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인정받는 나라이다. 돈이 들더라도 시한폭탄과 같은 핵발전소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적극 검토돼야 할 방안이다. 그것이 국민주권의 명령이다.
이 성 로(안동대 교수)
이 원 영(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