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빨리 우도농악 후계자 나타나길”
“하루빨리 우도농악 후계자 나타나길”
  • 영광21
  • 승인 2015.03.07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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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자<영광읍>

매년 정월대보름이면 고향에 사는 어르신들이 집으로 찾아와 남편을 데리고 갔다. 그 어르신들과 함께 떠난 남편은 함흥차사였다. 정월대보름뿐만 아니라 마을에 큰 행사가 있을 때면 언제나 남편은 고향으로 불려갔다. 많지 않은 농사를 지으며 힘들게 생계를 꾸리던 그 시절, 정월대보름이면 남편을 데리러 오는 사람들이 미웠다.

“남편이 어렸을 때부터 농악에 끼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마을에 큰 행사만 있으면 남편을 데리러 고향에서 어르신들이 오시는 거에요. 고만고만한 아이들은 셋이나 되지, 먹고 살기는 팍팍하지 돈도 안 되는 일을 하고 다니는 게 정말 싫었죠.”
이 정도는 애교수준이다. 언제부터인가 남편이 영광으로 농악을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1년에 몇번 고향에 다녀오는 정도는 참을 수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농악을 배우러 다닌다니 미칠 노릇이었다. 남편이 상쇠복을 빨아 마당 빨래줄에 널어놓으면 “여기가 무당집이냐”고 소리치며 바닥에 내 팽개치기도 했다. 그렇게 무능력한 남편을 원망하며 살기를 몇 년이 지났을까 남편이 전라남도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가 됐다.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세월 그토록 미웠던 농악, 그런 농악에 미친 남편에게 두손두발 다 들었던 그녀가 지금은 남편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남편의 이름이 빛날 수 있었던 것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도움을 준 그녀가 있었기 때문이다.
도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된 우도농악 예능보유자 문한준씨의 부인 조정자(63)씨의 이야기다. 그녀는 정월대보름과 같은 큰 행사가 있는 날이면 농악단원들의 옷부터 악기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확인하고 준비한다.
제사에 올릴 음식을 장만하는 것부터 단원들에게 옷 입는 방법을 알려주고 행사가 끝난 후 옷을 세탁하기까지 모든 과정에 조씨의 손길이 닿는다.

문한준씨는 “나는 공연하고 단원들 관리하느라 정신없는데 뒤에서 옷이며 악기를 챙겨주는 이 사람이 없으면 절대 이렇게 활동 못하죠”라고 말한다.
남편을 보조하기 위해 전국대회나 공연 등을 따라다니며 어깨 너머로 배우길 10여년. 어느새 그녀의 손에도 소고가 들려 있었다. 남편을 따라 영광의 우도농악을 알리고 보존하는데 한 몫을 하게 된 것이다.
“어깨 너머로 배우기도 하고 남편 성화에 못 이겨서 했는디 이제 허리가 아파서 못하것어”라고 말하면서도 “이제 저 양반이 우도농악 전수자도 기르고 책임을 짊어지고 나가야해서 빼도 박도 못해. 그러는 동안은 나도 어쩔수 없이 함께 해야지”라고 웃는다.
그토록 싫었던 농악이었지만 지금 그녀의 꿈은 하루빨리 후계자가 나타나 영광문화의 맥이 이어지길 바라는 것이다.
이서화 기자 lsh122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