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도 배울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
“이 나이에도 배울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
  • 영광21
  • 승인 2015.03.2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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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례<홍농초 늦깎이 입학생>

“내가 홍농초등학교를 벌써 두번이나 입학했당께. 건강하기만 하면 이번에는 꼭 졸업을 하고 싶은디 그게 될란가 모르것어.”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최금례(69) 어르신은 “내 깜냥에 2학년이나 됐다”고 수줍게 웃는다. 홍농읍 상하리에 사는 사람이라면 초등학교 등하교 시간에 책가방을 짊어지고 학교를 오가는 최 어르신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최 어르신이 낼모레 70세의 나이로 손자들보다도 어린 같은반 친구(?)들과 학교에 다니게 된 데에는 기나긴 사연이 있다. 살기 팍팍해 딸들은 학교에 보내지 않았던 시절에 최 어르신은 아버지의 도장을 몰래 훔쳐 홍농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렇게 열심히 1년 정도 학교에 다녔을까 어머니가 갑자기 지병으로 쓰러지자 5남매중 맏딸이었던 최 어르신은 집안 살림을 도맡아야 했고 어쩔 수 없이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그렇게 맏딸로 살다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자식 셋을 기르는 동안 배우지 못한 한은 두고두고 그녀 가슴의 응어리로 남아있었다.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도 그 응어리는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해 부끄러움을 무릎 쓰고 홍농초를 찾았고 두번째 입학을 하게 된 것이다.

최 어르신은 “홍농초등학교에 찾아가서 다시 입학해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어서 오시라’고 반갑게 맞아주시더라고. 그래서 더 용기내서 학교를 다니게 됐지”라고 활짝 웃는다.
최 어르신이 학교에 다닌다고 하니 우려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하지만 주변의 우려와 달리 배운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줬다.
최 어르신은 “지금 이런 나이에 나에게 배움의 길이 터졌다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며 “같은 반 아이들도 할머니라 부르면서 예의바르게 잘 대해주고 나보다 훨씬 똑똑해서 오히려 내가 아이들에게 배울 점도 많다”고 자랑한다.
최 어르신의 방 한구석은 1학년 때 배운 교과서와 다 쓴 공책들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학교에서 받은 생활통지서도 함께. 또 어머니의 늦깎이 공부를 응원하며 자식들이 사다 준 연필깎이기계와 새 공책, 연필도 가득이다.

“요즘 시상이 참말로 좋은 시상이란께. 저 많은 교과서도 공짜로 주고 점심밥도 그냥 주니 맛있게 먹고 다니제”라며 “다시 태어난다면 공부를 많이 해서 교사가 되고 싶어. 어렸을 때 꿈이 학교 선상님이었은께”라고 조심스럽게 어릴 적 꿈을 꺼내 놓는 최금례 어르신.
긴 세월속에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자리했지만 여전히 꿈을 꾸고 있어서인지 책가방을 품에 안은채 활짝 웃는 그 모습은 어쩐지 생기발랄하다.
이서화 기자 lsh122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