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척의 주민투표가 영광지역에 던지는 과제
최근 영광지역은 한빛3호기 증기발생기내 이물질 발견, 중·저준위방폐물 해상운송,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등 원전과 관련된 여러 현안을 놓고 정부, 한수원 등과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중·저준위방폐물 해상운송과 관련해 안전성, 온배수, 어민보상 문제 등을 놓고 어민들과 한수원이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홍농읍 일부 주민들은 “당장 방폐물 경주로 이송하라. 어민보상뿐만 아니라 주민보상도 논의하라”고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 사용후핵연료의 공론화를 위해 구성한 공론화위원회는 지역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영광지역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핵폐기물 처리시설의 부지선정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공론화위원회를 폐지해야 한다”고 비판하는 반면 “주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충분히 알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에 대해 주민이 판단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는 등 지역내에서도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한편 한빛3호기 증기발생기내에서 발견된 이물질과 관련해 23일 개최된 한빛원자력안전협의회에서는 원안위와 원자력안전기술원이 “남아있는 이물질이 안전하다고 판단했다”며 사실상 재가동 승인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일부 주민들은 “영광주민들 목숨가지고 장난하냐”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고 한빛원전민간감시기구 이하영 부위원장 역시 “원안위에서 기술적 안정성 평가는 끝냈다고 하더라도 주민수용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발전소 가동은 안된다”고 강조하는 등 한빛3호기를 재가동하려는 한수원과 원안위, 이를 저지하려는 지역주민의 의견이 평행선을 달렸다.
이처럼 원전과 관련된 각종 현안에 대해 정부와 한수원, 지역주민간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10월 주민들의 자체적인 주민투표를 통해 신규원전 설치 반대입장을 분명히 한 삼척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투표에는 지역주민 67.94%에 이르는 2만8,868명이 참가했으며 이는 지난해 6월 지방선거 투표율 68.8%에 육박한다. 정부는 이 투표결과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는 중대한 사안에 대해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주민투표를 실시하고 입장을 밝혔으므로 이를 무시한 정책결정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본지에서는 삼척에서 주민투표가 실시되기까지 과정을 자세히 나타내면서 핵발전소 정책에 대한 주민 수용성을 강조한 강원대 성원기 교수의 글을 게재한다.
/ 편집자 주
2011년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핵발전소의 위험성에 대해 국민들의 인식이 매우 높아졌다. 핵발전소는 우라늄을 분열시켜 발생하는 막대한 에너지로 물을 끓여 전기를 생산하지만 우라늄 분열시 핵반응 후 생성물 즉 인공방사능 물질인 방사능 요오드, 세슘, 스트론튬, 플로토늄 등은 고에너지의 방사선을 끊임없이 내보내 온 생명의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즉 인공 방사능물질과 인류를 비롯한 온 생명은 공존이 불가능한 것이다. 생명 자체를 부정하는 물질을 지속적으로 발생시키는 것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 되지 못한다. 세상에 생명보다 우선시 되는 가치는 없기 때문이다.
일찍이 핵의 위험성을 깨우치고 핵발전소를 막아내기 위해 33년째 싸워오고 있는 인구 7만의 해안가 작은 도시가 있다. 두차례 핵을 막아내고 세번째 핵과 맞서고 있는 곳, 그곳이 삼척이다. 삼척이 어떻게 핵과 싸워 왔으며 향후 과제가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한다.
삼척 반핵운동의 역사
1982년 당시 5공 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삼척원전예정지역이 고시되면서 삼척과 핵발전소와의 악연은 시작됐다. 10년 후 1992년 실제 핵발전소 건설의 움직임이 보이자 근덕면민을 중심으로 핵발전소 반대운동이 시작됐다. 근덕면 원전백지화 투쟁위원회가 결성되고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를 초청해 핵의 위험성에 대해 공부했다. 인근 울진핵발전소지역은 타산지석이 됐다. 1993년에는 근덕면 38개리 전체 이장단이 사퇴하고 8월 전체 주민에 해당하는 7,000여명이 근덕초등학교에 집결해 원전 백지화 항쟁에 돌입할 것을 결의했다. 이후 삼척시민 전체가 합세해 6년여간 이어진 대규모 집회, 원전장례운구, 삭발투쟁, 상경투쟁 등 피어린 항쟁을 통해 1998년 12월30일 삼척원전예정구역 고시를 해제시켰다.
전국 최초로 핵발전소 예정부지를 백지화시킨 것이다. 이를 기념해 8·29기념공원을 조성하고 세계 최초로 원전백지화 기념탑을 세웠다. 그리고 비문에 이렇게 새겼다.
“결사의 정신과 애향의 열정으로 청정해역과 수려한 산하를 지켰다. 우리의 반핵의지를 후손에게 계승한다.”
이렇게 첫번째 핵을 막아냈다.
그리고 2005년 핵방폐장에 대한 시도도 시의회의 부결로 막아냈다. 두번째 핵도 막아낸 것이다.
세번째 핵과의 싸움, 주민투표
2010년 12월16일 당시 삼척시장은 한수원에 삼척원전 유치신청을 했다. 세번째 핵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사실 정부는 2010년 원전유치 신청을 받으면서 삼척은 제외지역으로 분류해 신청 자체를 받지 않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이미 1998년 정부는 삼척시민들의 뜻을 수용해 삼척원전예정지역 고시를 해제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그대로 살고 있는데 또 다시 신청을 받는다는 것은 정부의 결정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으로 정부가 취할 자세가 아니다. 더군다나 신청요건에 주민투표를 의무화하지 않아 주민간의 갈등을 구조화했다.
주민투표법은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결정사항에 대해 주민투표를 부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한 가운데에 핵발전소가 들어오는 것보다 더 이상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주요결정사항은 없다.
정부는 2005년 핵발전소보다 덜 위험한 핵폐기장을 유치신청 받으면서 주민투표를 의무화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5년 후인 2010년 핵발전소 유치신청을 받으면서 주민투표를 의무화하지 않고 시의회 동의만 받아 지자체장이 신청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10년 12월4일 결성된 삼척핵발전소반대 투쟁위원회(상임대표 박홍표 신부)는 삼척시에 주민투표를 강력히 요구했다. 시의회는 삼척시장 명의의 주민투표 실시 공문을 접수한 후 주민투표 실시조건으로 삼척원전유치 동의안을 처리했다. 그러나 삼척시장의 주민투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2011년 2월 삼척시원자력산업 유치협의회에 의해 원전유치찬성서명부가 작성됐다. 주민투표가 아닌 찬성서명부로 주민수용성을 대신하려 한 것이다.
삼척시 유권자 5만8,339명중 5만6,551명이 찬성서명했다고 하는 96.9%의 찬성서명부가 만들어진 것이다. 삼척반핵단체는 도저히 불가능한 찬성서명부의 허위를 확인하기 위해 즉각 찬성서명부 열람을 요구했으나 거부됐다.
한 도시의 전체 유권자 중에 96.9%의 주민이 서명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 더구나 1982년부터 2011년까지 29년간 핵과 싸워온 반핵의 땅 삼척에서 96.9%가 찬성서명을 하고 3.1%인 1,788명만 서명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실제 사실일 수가 없다.
그러나 이 96.9%의 찬성서명부가 삼척시장과 삼척시원자력산업 유치협의회 명의로 청와대, 산업부, 한수원, 국회 등에 제출돼 삼척핵발전소유치 수용성의 가장 큰 근거로 사용됐다.
허위임이 분명한데 열람은 무시되고 국회에서 국감자료로 요구해도 자료가 없다고 제출되지 않는 상황에서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96.9%의 찬성율만 남아 행세했다. 또 삼척시장은 주민투표약속을 지켜 즉각 주민투표를 실시하라는 반핵단체의 요구를 무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1년 12월23일 한수원은 신규원전건설 후보지로 삼척과 영덕을 선정 발표했다. 주민수용성은 96.9%의 찬성서명부로 이미 끝났다고 강변하며 주민투표를 계속 거부하는 상황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민소환 밖에 없다고 판단한 삼척반핵단체는 2012년 6월 삼척시장 소환운동에 돌입했다.
삼척시장 주민소환 청구서명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소환운동 시기인 2012년 7월 강원대학교 삼척캠퍼스 전체 교수 204명중 107명이 삼척핵발전소 유치 반대입장을 밝히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유권자 15% 이상인 청구서명자 1만1,627명의 주민소환청구서명을 받아 2012년 7월31일 삼척선관위에 서명부를 접수했으며 선관위는 이를 심사해 2012년 9월13일 주민소환투표 청구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정부는 다음 날인 2012년 9월14일자로 1998년 원전예정구역 지정고시를 철회했던 삼척을 영덕과 함께 원전예정구역으로 다시 고시했다. 2012년 10월31일 실시된 삼척시장 주민소환투표는 방해와 억압으로 투표율이 1/3에 못 미치는 25.9%에 머물러 주민소환에 실패했다.
반핵후보 당선 이어 주민투표 진행
그러나 이후 2년간 반핵단체는 매주 수요미사, 촛불집회, 평일 1인 시위, 주말 시내도보순례, 전단지 배포, 대규모 집회, 3보1배 등을 통해 간절한 마음으로 시민을 깨웠다. 그리고 억압을 기억하고 있던 삼척시민들은 2014년 6·4지방선거에서 핵발전소의 유치와 민주주의 훼손, 억압을 심판하고 반핵후보를 68% 투표율, 62.4%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시키는 선거혁명을 이뤄냈다. 삼척이 깨어난 것이다.
그리고 핵발전소에 대한 진정한 민의를 보여주기 위해 그토록 외쳐왔던 주민투표를 실시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했다.
지난해 8월20일 삼척시는 원전유치신청 철회여부를 묻는 주민투표 동의안을 시의회에 제출하고 8월26일 시의회는 만장일치로 주민투표 상정안을 가결시켰다. 그러나 정부는 시의회 가결 당일 오후 원전유치는 국가사무이므로 주민투표의 대상이 아니라고 발표했다. 원전유치신청이 지방사무라면 원전유치 신청철회도 지방사무로 봐야 한다는 삼척시의 자문에 응한 법률가들의 공통된 의견에 따라 주민투표를 실시하려고 한 삼척시의 지방자치권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또 삼척시선관위도 정부의 입장에 따라 투표관리업무를 거부했다.
삼척시민들은 지혜를 모았다. 2004년 부안 민간인 자율관리에 의한 주민투표가 삼척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9월12일 삼척원전유치찬반투표 관리위원회가 구성되고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핵발전소 유치찬반을 묻는 주민투표의 일정이 사전투표일 10월8일, 주민투표일 10월9일로 9월15일자로 공고됐다.
삼척반핵단체는 시내도보순례, 가두방송, 전단지 배포, 집회 등 투표참여를 높이기 위해 총력활동을 전개했다. 10월7일 강원대학교 교수 184명이 <삼척핵발전소예정구역 철회를 요구한다>는 성명서를 통해 삼척 주민투표 지지를 선언했다. 일정에 따라 주민투표가 10월8일 사전투표, 10월9일 2일간에 걸쳐 실시됐으며 결과는 68%의 투표율중 압도적인 85%의 핵발전소 유치반대였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주민투표 하루 전날인 10월8일 사전투표일에 그동안 숨겨져 왔던 96.9% 찬성서명부를 김제남 의원이 국회에서 찾아내 국감자료로 공개했다. 공개된 찬성서명부는 한페이지에 15명의 서명이 동일인의 필체로 작성되는 등 허위로 가득했다. 명의가 도용되는 등 허위찬성서명부임이 밝혀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척시는 2014년 10월29일자로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삼척핵발전소 백지화를 요구하는 공문을 청와대, 총리실, 산업부, 한수원, 국회 등에 발송했다.
핵발전소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인류는 핵발전소에서 벗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핵과 인류는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은 이미 탈핵을 실천하고 있으며 핵발전소에 의존하지 않고도 충분히 전기를 생산해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10년간 태양광, 풍력 등 재생가능 에너지산업을 육성해 전기비중을 20% 이상 끌어올리고 있으며 매년 비중이 급상승 중이다.
특히 독일은 현재 전체 전기발전량중 재생가능에너지 전기발전 비중을 28%까지 높였으며 2022년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시키고 2050년에는 재생가능에너지 전기발전 비중을 80%까지 끌어 올려 화석연료로부터도 독립하려는 계획을 매년 초과달성중이다.
우리나라는 핵발전소 전기발전 비중 30%로 독일처럼 10년에서 15년간 재생가능에너지산업을 육성하면 대체할 수 있다. 이제 세계는 탈핵의 길로 가고 있다. 수명이 다한 노후 원전을 폐쇄하지 않고 현재 23기에서 추가로 18기를 더 지어 41기까지 늘리려는 정부의 핵 확대정책은 핵사고의 위험을 높이는 무모하고 위험천만한 정책이다.
체르노빌, 후쿠시마의 핵사고에서 보듯이 반경 30㎞ 이내에는 사람이 살지 못하는 땅으로 출입이 통제되고 반경 300㎞ 이내가 오염돼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그 영향이 최소한 300년간 이어진다. 이러한 사고를 막기 위해 노후 원전을 폐쇄하고 신규원전을 이제 그만 지어야 한다. 그 간절함이 삼척에 있다.
삼척에 핵발전소를 막는 것은 단지 삼척에만 들어오지 않으면 된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전국 어디에도 이제 핵발전소는 더 이상 지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신규핵발전소는 국민의 수용성, 주민의 수용성을 봐서 결정한다고 했다. 수용성은 핵발전소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이다.
삼척은 어렵고 긴 투쟁을 통해 주민자율로 주민투표를 실시했고 압도적으로 85%가 반대해 수용성이 없음을 세상에 보여줬다. 그리고 수용성의 근거가 됐던 96.9%의 찬성서명부도 허위임이 드러났다. 정부가 공언한대로 수용성이 없으므로 삼척시에서 공문으로 발송한 삼척원전 신청철회 요청을 받아들여 삼척핵발전소예정구역 고시를 1998년에 이어 2015년 또 다시 정부가 핵발전소예정구역 고시를 해제해야 한다.
그리고 영덕은 삼척에서와 같이 주민이 수용성을 보여줄 것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정부가 직접 나서서 주민투표를 실시하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 전체의 핵발전소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국민투표에 붙여 그 결과를 가지고 핵발전소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순리이다.
지금 국민의 생명이 핵에 의해 좌우될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는 국민의 생존권을 지켜내기 위해 간절하게 외치는 국민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더 이상 핵발전소를 짓지 말고 설계수명이 지난 노후 원전을 즉각 폐쇄해야 한다.
그리고 재생가능에너지산업을 집중 육성해 생산되는 전기량이 핵발전소 1기에 해당될 때마다 핵발전소를 1기씩 꺼나가면 10년에서 15년이면 23기 핵발전소를 모두 끄고 탈핵을 이룰 수 있다.
그것이 체르노빌, 후쿠시마의 비극을 우리가 반복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성원기 교수
삼척핵발전소
반대투쟁위원회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