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 수촌마을 상산김씨 삼강문 건립…역사 산교육장 역할 기대
영광출신의 항일의병장인 후은 김용구 선생의 충·효·열의 정신을 기르기 위한 상산김씨 삼강문이 후은 선생의 생가인 대마면 화평리 수촌마을에 건립됐다. 상산김씨 삼강문은 영광지역 유림과 국회의원 군수 등 기관·단체가 합심해 영광 출신 항일의병장 후은 김용구(1862~1919년) 선생 일가의 충·효·열을 기리기 위해 건립, 지난해 12월24일 제막식을 갖게 됐다. 삼강문이란 삼강(三綱)에 해당하는 충신, 효자, 열녀가 모두 배출된 집안임을 나타내는 정문(旌門) 또는 여문(閭門)을 말한다. 이번에 건립된 상산김씨 삼강문은 지붕 기둥 바닥 담장 전체를 화강석으로 지은 여문이다. 여기에는 <삼강려(三綱閭)>라는 현판 아래 후은 김용구 선생의 충, 후은의 아들 소파 김기봉 선생의 효, 소파의 부인 청송심씨의 열을 기록한 3개의 비석이 나란히 서있다.
후은 선생은 1907년 성재 기삼연 선생 등과 함께 항일의병을 일으켜 영광 고창 등 전남·북 접경의 서부 해안지방에서 일본군을 토벌했다. 1908년 총상을 입은 후 백암산 금산 등 산중에 기거하다 1919년 1월 고종황제가 승하했다는 소식에 비분해 음독 순절했다. 정부는 1968년 후은 선생에게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했다.
후은의 아들 소파 김기봉(1887~1907년) 선생은 성재 기삼연 등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907년 부친의 의병운동에 가담, 그해 12월 고창 흥덕 안현전투에서 부친을 호위하며 분전하다가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에서는 소파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또한 소파의 부인 청송심씨는 남편 소파 선생이 전사하자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 시신을 수습해 고향에 안장했고, 후은 선생이 순절하자 야음을 틈타 수백리길을 운구해 안장했다.
심씨는 이후 일본군의 방화로 가산을 모두 잃은 가난 속에서 노모를 봉양하며 수절해 가문의 대를 이었으며, 후은 선생의 친필 <의소일기>를 잘 간수해 후세에 전했다.
한편 영광지역 출신 이낙연 국회의원이 찬(撰)한 소파의 비문 첫 문장이 다소 이색적이다. “소파 김기봉. 스물하나 꽃다운 목숨을 아버지와 나라에 바친 이 젊은이는 지금도 우리에게 묻는다. 사내의 길은 무엇인가? 아들의 도리는 어떠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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