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 박찬석 / 본지편집인
한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이한 시점에서 동ㆍ서남 아시아를 강타해서 수 만명의 소중한 인명을 앗아간 대지진과 해일의 뉴스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그렇지 않아도 전쟁과 테러로 지구촌이 심한 열병을 앓고 있으며, 서민경제는 최악의 상태라서 버거운 한해를 보냈는데 세밑에 들려온 뜻하지 않은 비보는 우리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이런 와중에도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좀 더 희망찬 계획을 세우지 않을 수는 없다. 우리 사회가 동토처럼 삭막하고 살벌해진 지는 이미 오래다. 사람들은 갈수록 따뜻한 인정과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모질게 변해간다. 다른 사람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나 자기가 속해 있는 집단의 이익만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한다.
지나치게 영악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판을 친다. 다른 사람의 삶은 제멋대로 침해하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이기주의가 온통 세상을 도배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공동체인 세상을 얼어붙게 만든 이유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다. ‘너’ 없이는 ‘나’도 없다. 인간의 본질은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서 제 빛을 낸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서는 이기적이어서는 안된다. 다른 이도 모두 평등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또한 기득권 세력은 욕심을 버리고 함께 더불어 산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나’는 늘 잘못이 없으며, 그래서 양보하고 희생해야 할 사람은 항상 ‘남’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 꼭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2004년을 교수신문에서는 ‘당동벌이(黨同伐異 : 뜻이 맞는 사람끼리는 한 패가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물리침)’라는 넉자로 표현했다. 정치권의 극한 대립, 곤두박질한 서민경제, 수구세력의 공고한 연대, 유영철의 살인사건, 수능시험 부정 등 지난해를 장식한 무수한 사건들을 돌이켜 볼 때 적절한 표현이라고 하겠다.
당동벌이는 그 자체로도 환멸을 주었지만 갖가지 비루한 수법을 총동원하여 공동체를 파괴하는 데 더욱 큰 위력을 발휘했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말과 글은 물론이고 법과 역사까지 왜곡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독자적인 헌법기관이면서도 국회의원은 알량한 당론 뒤에 숨는 비겁함의 극치를 보였고, 면책특권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케케묵은 구시대적 유물인 색깔론을 양심의 가책도 없이 펼쳤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공동체의 파괴는 당연한 결과다. 우리 사회는 2004년 위험천만한 이분법에 의해 첨예한 대립을 했다. 이런 극한 대립을 이끌어 온 배경의 핵심은 가진 자의 기득권 지키기였다.
기득권 세력은 공고한 수구연대를 형성해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을 지키려고 발버둥을 쳤다. 현상타파의 거부를 넘어서 달라진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쳤다. 그 대표적인 예가 국민의 심판에 의해 넘겨진 권력을 탈취하기 위한 대통령 탄핵이었다. 패배자임을 겸허하게 인정하기는커녕 한 술 더 떠서 오히려 권력을 탈취하려고 한 것이다.
인간다운 삶을 되찾기 위해 새해에는 당동벌이의 구태를 버려야 한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추구하되 다른 사람의 견해가 설자리도 마련해주어야 한다. 이웃이 있어야 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제발 새해에는 서로 나누고 섬기는 공동체가 돼서 살맛나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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