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 거슬러선 승리할 수 없는 진리 자성
민의 거슬러선 승리할 수 없는 진리 자성
  • 영광21
  • 승인 2005.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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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이낙연 - 영광·함평 / 민주당 원내대표
2005년 을유년 새해를 맞으며
2004년이 저물었다. 잊을 수만 있다면 잊고 싶은 한 해였다. 끊임없이 국내정치가 혼란했고, 서민생활은 비참했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한 해가 지나가면 홀가분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도 못하다. 2005년에는 서민생활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들 때문이다. 국내정치도 나아지리라는 믿음이 별로 없다.

2004년의 정치는 집권 민주당 분당(2003년)의 폐허 위에서 시작됐다. 분당은 민주당 등 기존 정치권에 피해의식을 불러 일으켰다.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적개심에 가까운 불신을 자극했다. 2004년이 열리자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노대통령 탄핵을 본격 거론했다. 나는 탄핵거론이 노대통령에 대한 구두경고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탄핵소추는 실제상황이 됐다. 그러나 3월12일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가결되자 국민은 분노했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소추를 기각했다. 탄핵소추는 국민의사를 잘못 읽은 실책이었음이 입증됐다.

4월15일 총선은 선거라기보다는 혁명에 가까웠다. 탄핵소추의 역풍은 산이라도 무너뜨릴 기세였다. 한나라당은 제1당에서 밀려났다. 특히 민주당은 원내 9석의 제4당으로 위축됐다. 신생 열린우리당은 특별히 한 일도 없는데 과반의석을 확보했다. 민심은 그렇게 들끓었다.

그러나 민심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총선 50일 후인 6월5일 4개 시·도지사 보궐선거는 민심의 변화를 보여줬다. 부산시장 경남지사 제주지사는 한나라당이, 전남지사는 민주당이 차지했다. 열린우리당은 전패했다. 10월30일 기초자치단체장 보궐선거에서도 열린우리당은 참패했다. 민주당은 약진, 한나라당은 선전했다고 보도됐다. 불황과 실정에 따른 민심이반이 열린우리당에 패배를 안겼다.

10월21일에는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이전 위헌판정으로 온 나라가 또 한번 뒤흔들렸다. 정부 여당이 국민다수의 반대여론을 외면하면서 수도이전을 밀어붙인 결과라는 해석이 많았다. 노대통령은 탄핵소추보다 더 큰 타격을 받았다.

탄핵소추 - 4월 총선 - 6·10월 재보선 - 수도이전 위헌결정…. 민의는 살아 움직이며 고비마다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 냈다. 민의에 거스른 세력은 언제나 패배했다. 그 반대편이 반사이익을 얻었다. 그렇다면 국민은 일관된 승자인가. 그렇지도 않다. 어느 국민도 승리를 느끼지 못한다. 국민은 사회전반으로 확산된 분열과 갈등에 지쳐있다.

무엇보다도 2004년에는 유신시대 이후 최악의 불황이 국민을 짓눌렀다. 빈곤층이 늘고(전체국민의 10.4%) 빈부격차가 커졌다. 음식점 주인 3만명이 모여 솥단지를 던지며 시위를 벌일 정도가 됐다. 다섯 살 남자아이가 굶어죽기도 했다. 지금 국민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불황에 신음하고 있다. 이 신음은 2005년 이후의 정치에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다.

2003년의 민주당 분당부터 2004년의 탄핵소추와 수도이전 위헌파동에 이르기까지, 그 저변에는 일정한 권력투쟁이 깔려 있었다. 그런 바탕 위에서 사회의 여러 분야가 이념과 계층의 갈등을 일상사처럼 경험한 것이 2004년이었다. 교수신문이 ‘당동벌이’(黨同伐異 생각이 같은 사람은 편들어주고 생각이 다른 사람은 친다)를 2004년의 4자성어로 선정한 것은 아프지만 적절했다.

그래도 2004년은 귀중한 선물을 우리에게 안겨줬다. 민의에 거슬러서는 어느 세력도 승리할 수 없다는, 너무도 평범한 진리를 깨우쳐준 것이다. 사물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뒤집어진다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의 철리를 가르쳐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