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에 대한 대국민 의견수렴을 진행하기 위해 설립된 민간위원회인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활동이 1년8개월 동안 진행되고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
그동안 공론화위원회는 전문가, 일반국민, 이해관계자 그리고 원전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의견수렴 절차를 마치고 지금은 권고안을 작성 중에 있다고 한다. 특히 4개 원전지역(5개 지자체)은 각각의 전문기관을 통해 해당 원전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주민간담회, 토론회, 타운홀미팅, 심층인터뷰 등을 통해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영광지역 공론화의 현주소
㈜지앤에스이노베이션은 영광지역의 의견수렴 전담기관으로 선정돼 공론화를 진행하려 했다. 필자는 영국에서의 공론화 경험을 토대로 한국에서의 공론화 방향 설정에 관여한 경험을 살려 영광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숙의적 방법을 통해 체계적으로 담아보고자 했다.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학습과 다양한 생각을 갖고 있는 군민,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숙의적 토론 방법으로 담아내고자 했다. 영광의 지역사정상 의견수렴 기간이 6개월이었던 다른 원전지역에 비해 2개월로 짧았으나 충분한 사전준비로 효율적으로 진행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영광군의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본 기관의 계약 체결과 동시에 범 군민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의견수렴 계약 해지를 공론화위원회에 요구했고 영광군도 용역계약 해지와 지역 특위위원의 해촉을 내용으로 공론화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에 공문을 발송했다. 사용후핵연료 중장기 관리방안에 대한 정부의 일방적 정책 결정을 지양하고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의견을 담아내기 위한 공론화 과정을 왜 영광에서는 거부하는 것일까? 한빛원전에 임시로 보관돼 있는 사용후핵연료의 실상을 알리고 영광주민들이 바라는 바람직한 관리방안이 무엇인지 의견을 수렴해 보고자 하는 활동을 왜 반대하는 것일까?
공론화에 대한 오해
공론화는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담아 그 내용을 정부에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 권고안을 통해 정부는 정책의 방향을 잡는데 참고를 한다. 이 때문에 공론화 과정은 사회적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공론화를 하겠다고 지역내 또다른 갈등을 야기할 수는 없었다.
이런 이유로 무리하게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공론화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공론화는 모래성인 까닭이다. 왜 영광지역에서는 공론화를 거부하는지를 공론화위원회나 정부에 전달하는 것이 더 필요하겠다고 판단했다. 이것이 영광군의 현재의 상황이자 분위기인 탓이다.
공론화에 거부감을 갖는 단체는 공론화를 ‘고준위 핵폐기물처분장 부지 선정을 위한 과정’으로 인식하고 공론화위원회 활동은 부지 선정을 위한 ‘형식적인 절차’로 진행하고 있다고 받아들였다. 과거 정부나 사업자의 접근방식이 그러했기에 새로운 접근방식에 대해서도 여전히 의문과 불신의 시각을 갖고 있었다. 원전지역 내에서의 공론화 활동에 중추적 역할을 할 ‘지역 특위위원’에 대한 불신도 있었다. 영광지역 특위위원의 지역내 공론화 여론 확산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역특위위원의 활동을 사용후핵연료 관련 시설 유치 활동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짧았던 공론화 기간
더더욱 아쉬웠던 것은 합리적 의견 수렴을 위해 사전정보 제공과 사회적 학습, 숙의적 논의에 많은 시간이 소요됨에도 불구하고 지역내에서의 공론화 활동 기간이 너무 짧았다는데 있다. 공론화하는 전체 기간이 1년10개월 정도였지만 정작 원전지역내 의견 수렴 활동은 상대적으로 너무 짧았다. 물론 영광지역내 탈핵단체를 중심으로 공론화 거부감의 확산에 따라 일반 지역주민들 사이에서는 공론화에 대한 여론이 확산되지 못한 측면도 있었다.
일부 여론 주도층에서는 공론화의 일환으로 진행된 지역 의견수렴 절차를 기존에 행해졌던 ‘설문조사’나 ‘여론조사’로 오해하기도 했다. 공론화는 단순히 ‘몇 %의 찬성과 반대’를 숫자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공론화는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게 인식되는 행위이다.
충분한 학습을 바탕으로 치열한 토론도 진행되지만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는 상황에서 개개인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닌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그 사회가 직면한 최선의 안’을 찾아보는 과정이다.
사용후핵연료 논의의 방향
짧은 기간 동안 영광지역의 다양하고 많은 인사들을 만나볼 수는 없었다. 만났던 분들은 10여년전 중저준위방폐장 유치를 둘러싸고 2년반 동안 찬반으로 나뉘어 민민 갈등이 심화되고 지역이 양분화되는 심각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큰 상처와 아픔을 겪었다고 전했다. 그래서 사용후핵연료 문제에 대해서는 지역내에서 논의가 어느 정도 ‘금기’시 돼왔다고 한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지역 내에서 논의하는 것은 ‘금기’를 깨는 아주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영광지역은 한빛 3호기문제, 해수·공유수면 점사용 문제, 온배수 저감 대책, 중저준위폐기물 반출에 대한 피해 보상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함에 따라 사용후핵연료 문제의 지역내 논의도 이러한 대책의 일환으로 인식돼 온 측면이 있다고 한다. 한빛원전의 잦은 고장과 사고는 지역주민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사업자의 전문성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용후핵연료의 중장기 방안을 논의해 보자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영광내에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가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한 이유는 과거 중저준위방폐장 유치를 둘러싼 찬반의 갈등, 한빛원전의 잦은 고장, 지역주민들에 대한 정부와 사업자의 태도에 대한 불만이 쌓여 공론화에 대한 불만과 불신으로 확대됐다는데 있다. 공론화에 대한 거부는 결국 원전이 가동되면서 그동안 쌓여왔던 정부와 사업자에 대한 불신의 결과였던 것이다.
영광지역 주민들은 향후 원전 폐로 이후의 지역경제 침체에 대한 걱정과 함께 폐로 이후의 지역경제 활성화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를 위해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중장기 관리 방안에 대한 논의를 폐로와 연계해 논의할 필요가 있고 폐로 이후의 지역사회 공동화도 함께 논의할 것을 강조했다.
이번 공론화위원회에서 추진하는 원전지역 주민의 의견수렴이 영광지역에서 원활히 진행되지는 못했지만

이제부터라도 지역사회에서는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또다시 이 문제로 지역내 민민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제는 머리를 맞대고 심도있게 논의할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 익 철 대표이사
㈜지앤에스이노베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