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기울이면 이젠 감나무의 이야기가 들려요”
“귀 기울이면 이젠 감나무의 이야기가 들려요”
  • 영광21
  • 승인 2015.07.16 14: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9 - 염산면 오정규씨

“이제 얘네랑 말도 해요. ‘아픈곳은 없니, 목말랐지’ 이렇게요. 말 못하는 식물이라 제가 말을 하게 되더라구요.”
파란 논밭 사이 고즈넉한 시골길을 따라가면 멀리 언덕 중턱에 키 작은 꼬마 감나무 묘목들이 앙증맞게 자리잡은 오정규(57)씨의 감나무밭이 있다. 올해초 오정규씨의 밭에 소중히 심어진 묘목들은 금이야 옥이야 보살핌을 받으며 쑥쑥 자라나고 있다.
그는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주는 만큼 반드시 보답하지만 혼자 알아서 잘 크지도 않죠. 그래서 영양제도 주면서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말 못하는 식물이지만 아이 보살피듯 정성을 다하고 어엿한 나무로 자라 탐스러운 감을 주렁주렁 열게 될 날을 기다리며 즐겁게 땀 흘리고 있는 그다.

교수님의 귀농 결심
오정규씨는 강원도 삼척에서 대학 겸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외갓집이 염산인 그는 2년여후에 완전히 영광에 정착할 생각으로 염산에 집을 장만하고 1주일에 2번씩 군남에 마련한 감나무밭을 찾아오고 있다.
“사람은 언젠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어 더 늙기 전에 시골에서 흙을 밟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광은 토양이 좋고 기후가 온화해서 농사짓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라며 웃는 그다.
그는 50세에 귀농을 결심하고 삼척농업기술센터에서 5년간 교육도 받고 실제 농사도 지어보며 예행연습을 했다. 아내의 반대도 있었지만 노후대비 등을 이유로 설득해 지금은 아내가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고 한다.

따뜻한 주변 이웃들의 배려
“처음 밭을 일굴 때 물이 부족해서 주변 논에 댈 남의 물을 양해를 구하고 썼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밭에 물이 많이 들어가서 물주인에게 혼도 나고 죄송스러웠던 적이 있었죠.”
이웃에게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기도 했던 그는 인근에 물을 저장할 용도로 땅을 구입했고 지금은 예전 물을 빌렸던 이웃이 영광에 자주 올 수 없는 그를 위해 물을 잡아주고 있다. “이웃분들과 서로 돕고 지내는 따뜻함이 정말 좋아요. 영광은 귀농인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하기보다 관심을 주다가 친해지면 사랑을 주는 곳이예요. 내년에는 농업기술센터에 나가 감나무 동호인들과 교류도 하면서 지내고 싶어요”라는 그다.
이웃과의 관계를 소중히 생각하고 나무를 기르면서 겸손해졌다는 그는 “식물은 말을 못하기 때문에 상태를 정확히 알려면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겠더라구요. 자만하다가는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이 뭘 원하는지 놓칠 수 있으니까요”라며 웃는다.

오늘도 그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감나무의 상태를 잘 알기 위해 세심하게 사진을 찍어 보관한다.
그는 이론을 실전에 도입해 선진농법을 실현하고자 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계획적인 농법으로 좋은 품질의 감을 생산해 영광의 로고를 붙여 시장에 냈을 때 자랑스러운 마음을 갖고 싶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태풍에 대비해 지지대에 아이들을 묶어야 해요. 너무 세게 묶으면 아파하니까 적당히 잘 묶어야죠.” 오정규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는 꼬마 감나무들이 쑥쑥 자라 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게 될 날이 기다려진다.
배영선 기자 ygbys@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