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보니 귀농하길 정말 잘했어요”
“아이들을 보니 귀농하길 정말 잘했어요”
  • 영광21
  • 승인 2015.08.28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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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 군서면 김현주씨

넓은 들판에서 사랑하는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흐뭇하기 짝이 없다. 엄마의 일을 돕는다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풀을 뽑기도 하고 떡을 빚기도 한다.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아이의 성격에 맞는 교육을 하고 싶어 광주에서 고향으로 내려온 김현주(37)씨다.
김현주씨는 5년전 귀농해 모시와 동부를 재배하며 할아버지부터 대대로 운영해온 떡집을 물려받았다. <희망이 샘솟는 모싯잎송편>에서 그녀는 가게 이름대로 사랑하는 아들, 딸, 남편과 함께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이들을 생각한 귀농결심
“아들이 내성적이라 시골학교가 오히려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직장생활을 하며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수 없을 것 같아 귀농을 결심했죠.”
교육을 위해 도시로 가는 다른 부모들과는 반대로 아이를 생각해 시골에서의 교육을 택한 현주씨. 내성적이었던 아들은 시골학교에서 아이들과 더 잘 어울리며 적극적이고 밝은 아이로 변해가고 있다.
현주씨는 “아들 학교의 떡 만들기 체험행사에서 떡 만들기를 가르쳤는데 아들이 이런 떡도 만들 줄 아느냐며 자랑스러워 할 때 참 뿌듯했어요”라며 웃는다. 귀농했을때 고요한 시골 분위기에 적응이 안되기도 하고 새벽에 일어나 일을 해야 하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아이들과 교감할 수 있는 계기가 많아 귀농하기를 잘했다는 현주씨다.

좌충우돌 귀농 적응기
“처음 모시를 심을 때 어려울 줄 알았는데 모시가 너무 빨리 자라는 거예요. 3,000평 정도 모시를 심었는데 자꾸 자라니까 여러번 수확해야 되고 또 삶아야 되고 그래서 ‘제발 그만 자라라’ 빌기도 하고 그랬어요.”
현주씨는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기도 하고 떡 만드는 것도 보며 자랐기 때문에 농사와 떡이 익숙했다. 하지만 막상 직접 해보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현주씨는 “7월에 떡집을 시작했는데 다음해 12월까지 하루도 사고가 없는 날이 없었어요. 떡을 만들 때 모싯잎의 색 내기가 어려운데 떡을 쪘더니 누렇게 나와서 전부 버리기도 했어요”라며 웃는다.
또 깨송편에 넣는 깨를 너무 곱게 갈아서 깨송편이 맞냐며 항의를 받은 적도 있다. “그때 팔았던 깨송편 사진이 아직도 인터넷에 있더라구요. 창피해요 정말. 누가 물어보면 이제 말하죠. ‘이제 깨 적당히 갈아요’하구요.”

매달 잘 팔리는 떡이 다르기 때문에 매번 사고를 쳤다는 현주씨는 “1년이 지나니 더 사고칠 것도 없겠다 싶어서 오히려 자신감이 생기더라구요”라며 웃음을 터뜨린다.
1년간 죄충우돌하며 온 몸으로 떡 만들기를 배운 현주씨는 그 과정에서 정직하고 깨끗한 떡을 만들어야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겨울에 떡이 굳어서 뭘 좀 넣어볼까 하다가도 아이들이 보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죠. 그래서 솔직히 말씀드려요. 떡은 원래 굳으니까 데워서 드시라고요.”
예쁜 떡 보다는 전통의 방식대로 만드는 떡이 좋다는 현주씨는 노년의 삶을 나누는 삶으로 계획하고 있다. “전통떡을 배워서 아이들, 노인들에게 재능기부 형태로 나누고 싶어요. 노년에는 나누며 살고 싶어요.”
<희망이 샘솟는 모싯잎송편>에는 오늘도 아이들과 현주씨의 희망이 몽글몽글 샘솟고 있다.
배영선 기자 ygbys@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