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정권의 후안무치와 극우세력의 준동
아베정권의 후안무치와 극우세력의 준동
  • 영광21
  • 승인 2015.09.30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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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기어이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성큼 다가섰다. 지난 주말 아베정부는 국내외 반발을 무릅쓰고 안보관련 법안들을 강행 통과시켰다. 필요하다면 해외에서 다른 나라를 공격할 수도 있다. 방위로만 한정했던 일본 평화헌법의 봉인은 70여년만에 뜯겨지고 있다.
아베 정권이 밀어붙인 11개 안보법안의 핵심은 집단자위권 행사이다. 공격당했을 때만 방어하는 개별자위권을 벗어나 이젠 동맹국이 공격받으면 어디든 달려가서 싸울 수 있도록 했다. 자위대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보통 군대에 가깝다. 집단자위권은 일본의 야당은 물론 국민 70% 이상이 부정적이었다. 사실상 전쟁포기를 선언한 헌법 9조에 어긋날뿐더러 군국주의 부활을 염려하는 안팎의 의구심이 컸다.
그런데도 아베 정권이 뜻을 이뤘다. 왜일까? 우선은 국내 정치적 여건이 나쁘지 않았다. 오랜 경기침체에 더해 방사능유출 등이 겹쳤지만 아베 정권 들어 경제상황이 조금 나아졌다는 평가도 있다. 우익 지지기반이 튼튼한 여당에 비해 일본 야당이 분열돼서 여당의 폭주를 방조했다는 얘기도 있다. 무엇보다 전략적 이해에 기반한 미국의 지원이 가장 큰 도움이 됐다.

아베 정권은 이런 기회에 경제력에 더해 군사대국화를 이룬 강대국이 되고 싶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접점을 찾았다. 위협을 일삼는 북한도 일본의 군사굴기를 돕는 더없는 명분이었다.
일본의 집단자위권을 보는 우리 정부의 입장은 불편하고도 조심스럽다. 한반도와 관련된 군사활동은 우리의 동의를 얻을 것을 요구하지만 보장 여부는 불투명하다. 미국은 세 나라간 견고한 군사동맹을 구상하고 있어서 어떻게든 한·일간의 틈을 좁히려고 애쓰고 있다. 천안문 성루까지 섰던 우리나라가 또다시 담대하고도 유연한 외교적 상상력을 요구받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이 서린 아픔과 절규에도 나몰라라 외면하는 일본의 태도는 그 자체가 그때보다 더한 만행이 아닐 수 없다. 과거의 아픔을 현재의 분노로 만드는 괴력을 지닌 일본과 일본의 극우 아류들. 정작 아픈 사람들이 끝나지 않았다고 하는 데도 그들은 끝났다고 말한다. 그게 더 괘씸하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일본의 모습을 꼭 빼닮은 한국정부와 그 아류가 있다면 믿겠는가. 아마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무너질 대로 무너져 내린 가슴에 대못을 박으며 이젠 끝났으니 제발 그만하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세월호에 발목이 묶여 한국호가 앞으로 전진하지 못한다나. 보수단체들이 폭식투쟁과 맞불단식에 이어 아듀 세월호 깃발 화형식까지 하면서 그만하라고 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일본이 위안부에 대한 반성은 이미 다했으니 그만하고 내일을 이야기하자고 한다. 대한민국이 모든 것은 정부와 국회에 맡기고 세월호 참사는 이제 잊자고 한다. 그렇게 쉽게 잊을 수 있는 것이라면 왜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토록 한 서린 절규를 하겠는가, 왜 세월호 가족들이 장기 단식이나 집회를 통해 아픔을 토로하겠는가.

사람은 미워하면서 닮는다고 했는가. 대한민국은 지금 미워하면서 너무나도 일본을 꼭 닮아가고 있다.
일본도 원전사고후 경제 산업성이 맡고 있던 원자력안전·보안원을 분리해 환경성으로 이관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한국과 일본이 부서를 없애거나 만들고 아니면 다른 부서로 옮기는 것을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이다. 얼마나 닮은 꼴인가.
우리 정부에서 위안부 문제나 원전사고에서 보여준 일본의 아우라를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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