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남매 중에 막내딸로 태어났는데 가는 곳마다 예쁘다는 소리 많이 듣고 살았지. 우리 남편도 나를 정말 많이 사랑해줬어.”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수줍은 미소를 가득 머금고 늘 밝게 살아가고 있는 김효순(83) 어르신은 이제껏 살아온 삶은 언제나 사랑이 가득했던 행복한 삶이었다고 얘기한다.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남편 얼굴도 안보고 시집오던 시절 군남면에서 법성면으로 시집온 김 어르신은 시집살이 한번 안하고 살았다.
“자식 넷을 연년생으로 낳아서 키우는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어. 그래도 시어머니가 애들을 봐줘서 일하기도 편하고 좋았지”라고 말한다.
다리가 한쪽이 불편해 일을 할 수 없었던 남편을 대신해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지만 일꾼들을 두고 살았을 만큼 넉넉하게 살았다.
“우리 영감이 오토바이를 참 잘탔어. 내가 일하러 갈때면 늘 태워다 주고 태우러 오고 그게 일이었어. 정말 나밖에 모르고 살던 사람이었어”라며 먼저 떠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얘기한다.
매일매일 옆동네에 사는 손녀딸을 오토바이에 태워 등·하교를 시켰다는 남편은 24년전 따뜻한 봄날, 여느 날과 같이 손녀딸을 데리러 가는 길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벌써 24년전이네. 그날이 단옷날이었어. 아직도 생각하면 보고 싶고 영감이 눈에 아른거려”라고 말하는 김 어르신은 남편생각에 눈가가 촉촉해진다.
“그때 그 손녀딸이 벌써 32살이 돼서 올해 시집을 갔어”라며 밝은 웃음을 보이는 김 어르신은 “나도 나지만 우리 손녀가 잘 커줘서 고맙고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라고 말한다.
농사를 지으며 시부모님을 모시고 4남매를 훌륭하게 키워낸 김 어르신은 나이가 들어 아픈 곳은 늘어가지만 아직도 집안일은 직접 할 만큼 정정하다.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야. 키워놓으니 자식들 덕분에 호강하면서 살고 크게 아픈 곳 없이 사니까 얼마나 좋아”라고 말하는 김 어르신은 가까이 사는 자식들 덕분에 혼자 살아도 마냥 좋다고 말한다.
또 매일 경로당에 나가 마을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어 더할나위 없이 좋다고 엄지를 들어보인다.
“몇년전까지는 농사일도 조금씩 했었는데 이제는 병원에서도 하지 말라고 하고 자식들도 못하게 하니까 안해. 그냥 이렇게 밥 잘먹고 즐겁게 놀면서 사는 게 낙이야”라고 얘기한다.
소원이 있다면 지금처럼 건강하게 살다가 남편의 곁으로 가는 것이라는 김효순 어르신은 “혼자 있어도 든든해. 마을사람들이랑 도란도란 잘살고 좋지. 우리 자식들도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은혜정 기자 ehj5033@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