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어렸을 때는 정말 남부럽지 않게 부유하게 살았어. 시집오고 나서 고생도 많이 하고 돈 없이 살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행복했어.”
내리쬐는 뜨거운 가을 햇볕에 벼는 노랗게 익어가고 여기저기 추수하는 손길이 분주한 염산면 두우리에 홀로 살지만 행복하다고 말하는 송병희(94) 어르신.
영광이 고향인 송 어르신은 26세의 당시에는 조금 늦은 나이에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우리 친정집이 아주 부잣집이었어. 위로 오빠들이 있고 딸은 나 하나라 우리 아버지가 시집을 늦게 보내주셨어”라며 “그때는 얼굴도 안보고 시집오던 땐데 중매쟁이가 8살 많은 우리 영감을 소개해줘서 결혼했어”라고 말한다.
송 어르신은 “시집도 늦게 왔는데 와서 보니 다 마음에 안드는 거야. 그래서 다시 친정으로 가려고 했는데 우리 아버지가 여기다 뼈를 묻고 살라고 해서 안가고 살았지”라고 얘기한다.
부유하게 살았던 어린시절과 달리 시집온 후에는 살기가 많이 어려웠다는 송 어르신은 아들 셋에 딸 둘을 낳아 기르며 행복하게 살았다.
“남편을 보내고 혼자 자식들 키우려고 악착같이 일했어. 농사도 짓고 조개도 캐다 팔고 굴도 따고. 일도 해본 사람이 한다고 생전 안해본 일하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라며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손을 내보인다.
50여년전 남편이 중풍을 앓다 먼저 떠나고 자식들도 모두 자라 각자의 자리를 찾아간 후 홀로 살고 있는 송 어르신.
“아들이 서울로 같이 가서 살자고 했는데 나는 여기가 편하다고 했더니 아들이 집을 지어줘서 지금까지 살고 있어”라며 “지금 이 집에서 산지는 3년 정도 됐네. 그 전엔 저기 600번지에서 살았었어”라고 말한다.
워낙 부지런한 송 어르신은 허리와 다리가 아파 거동도 많이 불편해졌지만 하루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
송 어르신은 올해 들어서 몸이 예전같지 않아 병원을 자주 다니지만 깔끔한 성격답게 매일매일 집안을 청소한다.
“나는 밥은 안먹어도 집안이 지저분한 꼴은 절대 못봐. 요샌 못해도 1주일에 3번은 꼭 대청소를 하고 있어”라며 “이제는 일을 조금만 해도 손이 다까지고 아픈데 해놓고 나면 뿌듯해”라고 말한다.
하지만 송 어르신은 본인의 건강을 챙기기도 전에 몸이 안좋은 큰아들 걱정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나는 요양원 안가고 내집에서 사는 것만으로 큰복인데 우리 자식들도 다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자식들이 건강해야 집안도 잘 돌아가는 거야”라고 얘기한다.
은혜정 기자 ehj5033@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