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 상사화
노선봉 / 경기도 김포시
만나지 못할 인연
뒤꿈치 들고 목 길게 뽑아
하늘 향해 손짓하고
잎 없는 푸른 대궁위에
붉고 화려한 꽃봉우리 피워
구름 향해 님 소식 묻지만
붉게 탄 가슴 타고
꽃 향기 온산 가득해도
스치는건 소슬한 바람 소리 뿐
동상 천천히 걸어라
조경심 / 전남 광양시
불갑산 꽃무릇 만나러 가거든
바쁘게 뛰지 말고
너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걸어라
자연은 바쁘게 뛴다고
많이 보는 것 아니며
서두른다고
두 몫을 보는 것 아니더라
천천히 걸어라
꽃무릇 만나러 가거든
평소보다 더 천천히 걸어라
천천히 걸으며
꽃무릇과 대화하고
사랑하는 법
그리움 삭히는 인내를 배워라
천천히 걸어라
천천히 걷는 것,
즉, 느림은 게으름이 아니고
살핌의 여유란다.
동상 상사화 부부
고병균 / 광주광역시 북구
장인어른을 만나 뵌다. 아내와 맞선을 볼 때에도, 가정을 이루고 나의 아이들 3남매가 태어났을 때에도 뵙지 못한 장인어른을, 며칠 사이에 한 번도 아니고 연거푸 두 번이나 만나 뵌다. 아내와 부부의 연을 맺은 후로 37년만이다.
장모님의 삼우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우리는 처가로 갔다. 처가의 장손 나의 사촌 처남, 그의 부인이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 혼자 고향을 지키고 있다. 셋째 며느리였던 나의 장모님은 누에를 치던 사랑채에 신혼의 보금자리를 차렸다고 하면서 처남이 손을 들어 가리키는 집터에는 고추가 심어져 있다.
“이리 와 보소.”
처남은 나를 뒤란으로 인도했다. 거기에는 동백나무가 두 그루 나란히 서 있다. 처가에 여러 번 왔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나무이다.
“아버지께서 여기에 글자를 새겨 놓았다네.”
왼쪽에 서 있는 동백나무에 다가간 처남은 굵은 가지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습기가 찬 곳이라 이끼가 두껍게 끼어 있어서 무슨 글자인지 분간할 수 없다. 바가지에 물을 떠와 뿌리면서 수세미로 조심스럽게 문질렀다. 그때서야 글자의 형태가 드러난다.
(중략)
사촌 처남 염구의 말이다. 나이 80을 넘긴 할아버지가 문중 일로 바삐 놀리던 손을 잠시 놓고는 나에게 슬쩍 던진 그 말이 귓가에 쟁쟁하다.
이렇게 하여 내가 만나 뵌 장인어른은 동백나무에 새겨진 당신의 휘諱였다. 이것이 첫 번째 만남이다.
“아버지 사진이네.”
아내가 빛바랜 사진을 한 장 들고 왔다. 장모님의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한 사진이란다. 사진 속에는 쌍 가르마의 멋쟁이 신사가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에서 이마 부분의 살점이 살짝 떨어졌으나 대체로 온전하다. 뒷면에 한자漢字의 약자로 ‘당23세’라 쓴 글자가 있다.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오로지 당신만이 간직하고 싶었던 사진, 향년 92세로 세상을 하직하는 그날까지 나는 물론 아내조차 본적이 없는 사진, 그것은 장모님에게 가장 소중한 유품이었다.
(중략)
소식조차 없는 야속함에 ‘왜 그렇게 가버렸느냐?’고 원망도 하셨을 것이며 밤마다 찾아오는 젊은 시절의 외로움과 늙고 병든 몸 의지할 데 없는 말년의 서러움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에도 ‘나더러 어쩌란 말이요?’ 하며 한탄을 하셨을 것이요, 사진의 살점이 떨어지도록 어루만지고 쓰다듬을 때에는 장모님의 가슴에서도 빠알간 살점이 뚜욱 뚝 떨어졌을 것이다.
피를 토하듯 내뱉은 장모님의 한숨이 유리창에 낀 성에처럼 사진 속에 가득 서려있다. 그것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킨다. 세찬 소용돌이가 되어 내 몸을 감싸고돈다. 차갑기도 하고 뜨겁기도 한, 종잡을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지면서 오싹 소름이 돋는다.
이것이 두 번째의 만남이다. 내가 만나 뵌 장인어른은 장모님의 유품 빛바랜 사진이다. 멋쟁이 신사, ‘당23세’의 앳된 장인 앞에 삼가 인사를 올린다.
나와 장인어른과의 해후는 모두 장모님의 사후에 이루어졌다. 두 분의 기구한 삶은 수선화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 상사화의 일생과 매우 흡사하다.
‘꽃길 따라 걷는 사랑여행!’이란 주제로 불갑사 관광지 일원에서 열린 제15회 상사화 축제 현장을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인 꽃, 상사화이다.
상사화는 슬픈 전설을 간직한 꽃이다.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빌며 탑을 도는 효성스러운 딸과 그 여인을 몹시도 사모한 수발 스님과의 사랑이야기, 큰 스님의 수발을 드는 자신의 신분 때문에 백일 동안의 불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여인에게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한다. 여인을 그리며 애태우던 수발 스님은 결국 시름시름 앓다가 입적하고 말았다. 이듬해 그의 무덤에서 잎이 나오고 그것이 스러진 후에 빨간 꽃이 피었다는 슬픈 이야기를 전설로 간직한 꽃이다.
나의 장인, 장모님은 전생에 상사화였을 것이다. 봄에 솟아나는 선형 곧 폭이 60cm 정도로 넓고 길쭉한 모양의 잎은 장모님으로 환생하셨고 여름에 높이 60cm 정도의 꽃줄기에 연붉은 자줏빛으로 피어난 깔때기 모양의 꽃은 장인어른으로 환생하신 것이다.
나의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 상사화처럼, 그리움으로 몸서리치며 사시다가 애절하게 그 생을 마감하셨다.
기구한 운명의 두 분은 영락없는 상사화 부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