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21시론 - 유은종 / <원불교 천지보은회>
현대인들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너무 많다. 선택이라는 정답이 없는 질문들과 부딪쳤을 때 도움이 되는 것은 나보다 먼저 이런 선택들과 맞닥뜨렸고 어떤 쪽으로든 결정을 했던 선배들의 경험이다. 그래서 생각이 깊되 머뭇거리지 말고 결단력 있게 충고를 해줄 수 있는 든든한 선배를 두고 있는 친구는 세상 잘사는 친구일 것이다.윗사람에게 사랑받기는 쉬워도 아랫사람에게 인정받기란 대단히 어려운데 내가 무엇을 하고자 했을 때 ‘선배가 하는 일이라면’하고 기꺼이 따라와 주는 후배를 두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그러나 인생길에 있어 좋은 후배를 두는 것은 훌륭한 선배를 두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나를 믿고 따라와 주는 멋진 후배 한명쯤 있는 친구가 세상 잘사는 친구일 것이다.
요즘 같은 어려운 세상살이에 꼭 필요한 친구라는 개념을 생각해 본다. 친구라고 해서 언제나 내 편만 들어서는 곤란하다. 좋은 약 일수록 입에는 쓴 법이다. 이런 잔소리쟁이 친구가 있어야 혹여 나의 눈에 편견의 껍질이 씌워지더라도 쉽게 벗겨낼 수 있다. 당시에는 친구의 비판과 잔소리가 듣기 싫고 서운하겠지만 이후에 생각해 보면 친구의 한마디가 좋은 약이 됐음을 알 수 있을 것인데 그런 친구가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할 것이다.
이러저러한 설움중에 가장 슬픈 것은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이다. 이해받지 못한 자의 상처는 소심함과 열등감을 만든다. 사람들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때 정말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무엇을 하든 ‘내편’보다 든든한 재산은 없다. 그런 친구가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할 일이다.
흔히 나같이 술을 좋아하는 남자들은 술 몇병 마셨는가 하고 병의 숫자와 우정의 깊이를 비례한다고 말한다. 감정의 신호가 술 한잔 원할 때 친구가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와 앞자리에서 유쾌하게 술잔을 부딪쳐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친구가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할 일이다.
친한 사이일수록 금전관계는 금물이라고 했다. 하지만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터놓고 긴급구조요청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친구뿐이다. 나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속 시원히 돈을 꾸어줄 수 있는, 아니 주면 받고 안주면 포기하고 마는 그런 여유있는 친구를 한명쯤 알고 있다면 마음이 한층 여유롭고 든든해질 텐데 그런 친구가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할 일이다.
오래된 술일수록 향이 깊고 맛도 진하다.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리는 일은 덜 익은 술을 마실 때처럼 재미없다. 반면 빡빡머리, 콧잔등에 코딱지가 이글이글 늘어붙던 어린 시절부터 유지해온 우정이라면 눈빛만 봐도 무엇을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오랜 친구가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할 일이다.
누구라도 한번쯤은 ‘남녀간에 우정이 가능할까’를 생각해 볼 것이다. 물론 이 문제에 난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단지 확실한 것은 남녀의 가치관이 분명 틀리다는 점이다. 같은 남자끼리의 동성이면서도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 친구도 많다.
이럴 때는 오히려 ‘우정이상 사랑이하’의 속 깊은 이성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편이 위안 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성으로서가 아닌 다른 성과의 솔직한 대화는 나의 가치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친구가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할 일이다.
유 은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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