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지금처럼만 행복하게 살고 싶어”
“딱 지금처럼만 행복하게 살고 싶어”
  • 영광21
  • 승인 2015.12.1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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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희 순 어르신 / 염산면 야월리

“참으로 지독한 세월이었지. 어찌나 힘들었는지 지금은 다 잊어버리고 살아.”
쌀쌀한 초겨울 날씨에 옷깃을 여미며 경로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분주하다.
염산면 야월리 작은 마을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며 살고 있는 김희순(82) 어르신.
“내 나이 스무살 섣달 보름날에 눈이 엄청 많이 왔는데 그날 나는 영광에서 꽃가마 타고 염산으로 시집을 왔어. 와서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게 세월이 이만큼이나 갔네”라고 얘기한다.
5살 연상의 남편을 중매로 만나 결혼한 김 어르신은 키가 훤칠한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나는 6남매중에 큰딸이었는데 우리 친정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시집올 때도 동네 어른들한테 물어보고 준비해서 시집왔어. 우리 영감 처음 봤을 때는 부끄러워서 숨어다니고 그랬지”라며 웃는 김희순 어르신.
둘째며느리로 시집와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진 않았지만 시집을 와서도 챙겨야 했던 친정식구들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는 김 어르신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에 동생들까지 살뜰히 챙겼다.
“나도 시집와서 딸 다섯에 아들 하나 낳고 살면서 우리 동생들 시집, 장가 다 보내고 그렇게 살았어. 그때 참 고생 많이 했다니까”라고 말한다.
농사를 짓고 다른 사람 집의 일을 도와주고 받은 품삯으로 먹고 살았던 그 시절엔 쌀 1되도 귀하디 귀했다.

“우리 딸들이 어릴 때부터 집안일도 알아서 하고 엄마 힘들까봐 일도 많이 도와주고 했어. 알아서 척척 잘하고 누구 하나 속 썩이는 자식 없이 잘 커줬지”라며 “지금도 딸들이 잘 챙겨주니까 기특하고 고맙게 생각하고 살고 있어”라고 말한다.
10여년전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지금은 혼자 살고 있지만 시집간 딸들에게 혹여나 피해를 줄까 싶어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엄마는 오늘도 더 힘을 낸다.
김 어르신은 나이가 들어 기운은 많이 떨어졌지만 아직까지는 집안일도 직접 챙길 만큼 정정하다.
“나는 다른 사람한테 신세지는 것이 싫어서 어지간하면 직접 다 하고 살아. 내 몸이 건강해야 밥도 해먹고 살지. 그래서 요샌 병원에 자주 다니면서 침도 맞고 물리치료도 받으면서 건강관리도 하고 있어”라고 얘기한다.
김 어르신은 “지금처럼 마을사람들이랑 재밌게 살면서 잠자듯이 영감 곁으로 가고 싶어”라며 “내 소원이 하나 있는데 내가 죽기전에 그 소원이 꼭 이뤄졌으면 좋겠네”라고 말한다.
은혜정 기자 ehj5033@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