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릴레이 - 이 정 남 씨 / 영광읍
‘장애인’하면 우리 대부분은 어렵고 힘들어하는 모습으로 그들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가진자들의 허영에서 나오는 불손한 고정관념이 아닐까 싶다. 영광읍 단주리 이정남(53)씨. 그와의 만남이 바로 이런 고정관념을 완전하게 날려버리게 했다. 이정남씨는 월남참전국가유공자인 남편을 만나 23살에 결혼을 해 어려운 살림을 꾸려갔다. 그러던 중 남편이 고엽제후유증으로 건강이 점점 안좋아져 갔고 그때부터 그는 막노동장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게 된다.
그러던 1993년, 고3의 아들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새벽기도를 다녀오 던 그는 대형트럭과 부딪혀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그후부터 그는 한 쪽 다리를 구부릴 수 없는 장애를 입게 됐다.
이렇게 장애인이 된 그는 영광장애인협회에 가입을 했고 현재는 여성과장을 맡아 일하며 협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크고 작은 일들을 돕고 있으며 여성장애인들의 모임인 소나무회 회장도 함께 맡고 있다.
장애인협회 회원들은 “이 씨는 우리들의 모임이 있을 때면 먼저 나와 점심 식사를 마련해 주고 도움을 요청하면 두말 없이 달려와 주는 고마운 사람이다”고 일상에 매사 모범을 보이는 그를 소개했다.
“별다르게 한일은 없고 제가 시간이 되고 여유가 있을 때 잠깐씩 협회에 나와 일을 도왔을 뿐이다”고 환하게 웃는 이 씨. 단주리부녀회장도 맡아 마을일에도 매사 적극적으로 앞장서 돕고 있어 주위에 귀감이 되고 있다.
사고 후 1년정도를 쉬고 난 뒤부터 지금까지 노동일을 하고 있는 이 씨는 몸이 불편해 서서 일을 하지 못하고 앉아서 일을 하면서도 그는 몸의 불편함이나 일에 대한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고 꿋꿋하게 사회를 지켜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부지런한 어머니 아래서 자란 그의 1남1녀의 자녀 또한 훌륭히 자라 아들은 경찰간부생 시험에 합격해 전북경찰청 경위로 재잭중이고 딸도 병원 원무과에 근무하며 성실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 그만 일을 해도 되겠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아직 건강한데 열심히 일을 해야죠”라며 다시 일선으로 향하는 이 씨. “물질적인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해도 나보다 더 몸이 불편한 이들의 손과 발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앞으로의 작은 소망을 밝히는 그의 밝은 모습은 가난 그리고 장애를 이겨낸 장한 어머니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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