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의 아침을 알린 해방둥이 어르신들의 삶과 희생
새 시대의 아침을 알린 해방둥이 어르신들의 삶과 희생
  • 영광21
  • 승인 2015.12.3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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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전쟁 혼란 속에 살아온 인생 … “어렸을 때는 먹을게 없어서 보리가루를 …”

 북한, 메르스, 테러, 민중총궐기대회 등 다사다난했던 2015년이 지나고 병신년 새해가 밝았다.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가슴 설레고 기대로 가득하다. 올해는 또 어떤 일들이 우리를 웃고 울릴지 모르지만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다.
본지에서는 지난해의 암울한 기억은 지우고 밝은 새해를 맞이하자는 의미로 일제시대의 종언과 함께 태어나 대한민국의 새 시대를 몸소 겪어온 우리지역 해방둥이들의 삶을 조명한다.
/ 편집자 주

 

1945년 길고 긴 암흑의 시대가 끝났다.
30여년간 전국을 뒤덮은 어둠의 그림자는 신령스러운 빛의 고장 영광도 피할 길이 없었고 대규모 간척사업 동원, 강제징용, 수탈 등 상처만을 남기고 물러갔다.
어둠을 몰아내고 한 시대의 종언을 알리듯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태어난 아기들, 해방둥이다.
1988년부터 25년여를 이어온 우리지역 해방둥이들의 모임 을유회(회장 김정길 사진). 을유회는 평생을 함께 해온 해방둥이들의 또래모임으로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변천을 온 몸으로 겪어온 이들의 모임이다. 30여명의 을유회 어르신들은 지난해 12월26일 70세가 된 2015년을 마무리하기 위해 영광읍의 한 식당에 둘러 앉았다.
김정길 회장은 “어려서는 먹을게 없어서 보리가루를 갈아서 묽게 죽을 쒀먹기도 하고 독성이 있는 쌀겨를 볶아 먹고 온몸이 붓기도 하고 그렇게 살았지”라고 해방직후의 힘들었던 삶을 추억한다.
해방둥이 어르신들은 당시에 생활은 비록 힘들었지만 해방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뻤고 이웃들간에 정으로 한데 똘똘 뭉쳐 배고픔과 가난을 이겨냈다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
겨울이 오면 땔감이 없어 풀뿌리를 말려 불을 땠으며 전기가 없어 달밤에나 돌아다녔다는, 지금의 젊은이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을 이야기를 웃으며 나누는 어르신들이다.

격동의 대한민국
해방의 기쁨도 잠시 해방둥이들이 만 5세가 되던 해 여름, 동족상잔의 끔찍한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의 포화와 좌·우익의 갈등은 영광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6·25 피살자 명부에 따르면 6·25 당시 영광지역 피살자가 2만여명에 달했으며 그중 10살이하 어린이 수가 2,500여명이었다고 한다.
해방둥이들은 밤손님(빨치산을 부르던 별칭)을 피해 엄마나 할머니의 손을 잡고 밤마다 산으로, 들로 숨어다니는 끔찍함을 겪었다.
김정길 회장은 “그때 얘기는 하지 맙시다”라며 아직까지 생생한 당시의 기억에 몸서리쳤다.
전쟁이 끝나고 청년이 된 해방둥이들은 월남전에 참전했다. 경제적인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의 이름을 걸고, 가족의 생계도 짊어지고 월남으로 떠난 30만명의 청년들 가운데에는 을유회 김정길 회장, 조장수 어르신도 있었다.
이후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되며 많은 해방둥이들이 서울로, 외국으로 떠나기도 했다. 산업역군이라는 이름으로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중동, 유럽 등에서 고국에 돌아가 행복할 날만을 꿈꾸며 온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그러나 그들이 희생으로 일군 경제적 기반위에 독재와 탄압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어둠이 드리워졌고 학생들을 중심으로 민주항쟁이 이어지며 해방둥이들은 또다시 격한 시대의 흐름을 겪는다.

“살만해지니 일흔이야”
수많은 변화와 발전과 혼란속에서도 내 자손들이 우리처럼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일념하나로 희망의 끈을 붙잡고 희생하고 인내해온 해방둥이들.
“살만하니 벌써 일흔이 넘었네.” 정신없이, 악착같이 살아온 지난 세월의 흔적들은 고스란히 을유회 어르신들의 이마에, 눈가에 깊고 깊은 주름이 됐다.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앞만 보고 달려온 이들은 어느새 뒤를 더 돌아보고 하늘을 더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인생무상’ 허무함을 느낄 법도 하지만 을유회 어르신들은 자신들의 희생이 지금의 세상을 만드는데 밑거름이 됐다는 사실이 제법 뿌듯하기도 하다.
“우리도 힘들게 살았지만 우리보다 앞에 살았던, 일제치하에 살았던 이들은 얼마나 더 힘들었겠어”라며 웃는 이종성 어르신.
이제 여유를 갖고 함께 어려운 시기를 살아온 친구들과 소주도 한잔 기울이고 서로 보고 싶으면 찾아가 만나기도 하며 그렇게 조용하고 평화롭게 남은 여생을 보낼 어르신들.
을유회의 닭띠 어르신들은 ‘새벽을 알리는 동물’ 닭처럼 우리에게 밝은 아침을 열어준 것은 아닐까.
“비워야 채워지지. 사람 욕심에 비우는 것이 쉽지 않지만 비우고 살아야 해. 그래야 또 채워져.”
배영선 기자 ygbys@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