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버림 정 종 선생 영전에
온버림 정 종 선생 영전에
  • 영광21
  • 승인 2016.02.25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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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선생님이 그토록 좋아하고 그리워하신 고향 영광은 그제부터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습니다.
그러다가 비가 눈으로 바뀌어 온 천지를 하얗게 수놓기 시작했습니다. 하얀 눈을 좋아하신 선생님의 가시는 길을 수놓기 위해서였을까요? 그때 선생님의 갑작스런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재작년 선생님의 백수연 잔치 때 아드님께 ‘앞으로 7 ~ 8년은 거뜬할 거라’는 말을 들었기에 이렇게 황망하게 떠나실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선생님! 생각나시는지요? 언젠가 물무산에 올라 눈 덮인 영광시내를 내려다보시면서 “이 선생! 세찬 눈보라 치는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면 지붕마다 소복이 쌓여 있는 이 모습을 보고 어찌 시를 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영광은 시인이 많을 수밖에 없어”하시던 말씀을요.
선생님과의 아름다운 삶을 되짚으면 떠오르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하얀 눈같이 맑은 영광의 아이들을 누구보다도 사랑하신 선생님, 영광우체국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선생님 아파트에 데리고 가서 라면을 끓여주고 피자와 통닭을 사먹이며 기뻐하셨지요.
그런데 그 아이들이 시력이 좋지 않은 선생님을 속이고 용돈 궤짝과 지갑을 몽땅 털어가 버렸지만 그 때도 선생님은 저에게 “이 선생! 잃어버린 돈은 아깝지 않네. 그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수가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슬프네!” 하셨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10년전 앙코르와트와 베트남을 꼭 가보고 싶다고 하시면서 저에게 휴가를 내라고 하셨지요. 선생님께서 가보고 싶다던 앙코르와트 입구에 도착해서 제가 “선생님! 다 왔습니다”하고 말씀드리자 자리에 조용히 앉으시면서 “이 선생, 나는 시력이 좋지 않아 아무것도 볼 수 없네” 하셨습니다. 그때서야 위대한 세계문화유산을 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있습니다. 제가 50살이 넘어 운전면허증을 취득했다고 말씀드리자 다음날 중고차라도 살 때 보태라면서 수표 한 장을 주셨습니다.
선생님이 주신 수표 한 장은 500원이 싸다고 터미널 빵집까지 날마다 수레를 끌고 다녀오시기를 2,000번을 더 왕복해야만 하는 금액이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고 목이 메이며 통곡합니다. 선생님이 베푸신 큰 사랑, 가르침은 이 밤을 다새워가며 적어도 부족할 따름입니다.
선생님은 고향 영광의 아이들과 야든이 같은 사람을 좋아하시고 항상 자신을 낮추고 모든 사람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의 한 평생이 성자의 삶이셨습니다.
불교 <천수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백천만겁 난조우’ 제가 몇 생을 살아야, 그리고 몇 겁의 세월이 지나야 선생님의 따스한 사랑, 가르침을 다시 받을 수 있을런지요.
선생님! 이제는 그토록 그리워했던 사람들 조운, 조남령 선생님 그리고 평생 마음의 지기였던 조희관, 정태병 선생님과 마음껏 시와 문학을 나누고 고향의 추억을 나누십시오.
그리고 선생님이 그토록 사랑하셨던 고향 영광에 그 벗들과 다시 오셔서 크나큰 가르침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영광의 모든 군민들과 먼저 가신 친구분들, 제자들의 혼령을 대신해 삼가 선생님의 영전에 큰절을 올리며 극락왕생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원왕생! 원왕생! 원왕생!
이 정 연
대한불교조계종 정각사 상임포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