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차디 찬 바람이 옷깃사이로 파고들지만 서서히 봄의 기운이 느껴지는 홍농읍 성산리에는 그동안의 고생을 보여주듯 어느새 새하얀 백발의 할머니가 된 주순례(93) 어르신이 있다.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띠동갑 남편을 만나 결혼한 주 어르신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편을 만나 결혼한 것이 늘 원망스러웠다.
“처음에 결혼할 때는 나이 많은 사람이랑 결혼하라고 하니까 싫었지. 나는 18살인데 영감은 30살이었으니까. 그래도 자식 낳고 잘 살았지”라고 말한다.
결혼전부터 고생을 많이 했던 남편은 69세의 나이에 먼저 세상을 떠났고 주 어르신은 홀로 6남매를 책임져야 했다.
농사를 지으며 자식들을 위해 살아온 주 어르신은 귀하디 귀한 큰 아들마저 먼저 떠나보내 마음 한켠엔 늘 그리움이 가득했다.
“없이 살아서 힘든 것은 말로 다 못하지. 매일매일 밥먹고 일하고, 밥먹고 일하고 그것이 내가 사는 거였어”라고 얘기한다.
오랜 고생 끝에 지금은 자식들에게 효도 받고 살고 있다며 아들, 딸 자랑에 여념이 없는 주 어르신.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둘째아들부터 멀리 살지만 늘 엄마를 먼저 챙기는 막내아들과 딸들 덕분에 주 어르신의 노년은 행복하기만 하다.
“그렇게 고생만 하고 살았어도 아직까지는 잘 걸어다닐 수 있고 직접 살림 다 해먹고 사니까 이만하면 건강하게 사는거지”라며 “큰 빨래는 옆집에 사는 봉천댁이 도와주고 동네사람들한테 이것저것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서 좋아”라고 말한다.
넉넉하지는 못했어도 사랑을 다해 키운 아들, 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아가는 것만이 최고의 효도라고 말하는 주 어르신은 “우리 막내아들은 교감선생님이야”라며 아들자랑에 함박웃음을 짓는다.
“자식들이 멀리 살아서 다 못해줘서 군에서 내의도 사오고, 라면도 사오고 많이 도와주니까 나는 살만해”라고 얘기하는 주 어르신은 경로당에도 꼬박꼬박 나가 마을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1주일에 1번씩 요가를 배우는데 재미도 있고 몸이 건강해지는 것 같아서 좋아”라고 얘기한다.
마을사람들과 함께 얘기도 하고 화투놀이도 하면서 즐겁게 살고 있는 주 어르신은 아들, 딸들이 건강하게 사는 것 말고는 바라는 것이 하나도 없다.
“나는 이렇게 늙고 병들었어도 얼마나 재밌게 사는지 몰라”라며 “우리 자식들이 내 걱정보다는 자기식구들 먹고 살 길을 부지런히 닦아서 최고로 잘 살았으면 좋겠어. 나는 지금도 행복해”라고 말한다.
은혜정 기자 ehj5033@yg21.co.kr
주 순 례 어르신 홍농읍 성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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